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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블루스 거장 김목경 “음악은 양심과 아름다움”

[인터뷰] 블루스 거장 김목경 “음악은 양심과 아름다움”

기사승인 2019. 07. 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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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만난 블루스 마에스트로 김목경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방정훈 기자
“지금까지 쭉 살면서 느낀 결과물이 뭐냐면 인생은 ‘아름다움(美)’이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음악 안에도 아름다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헤비메탈이 됐든 뭐가 됐든 시끄러운 음악이든 조용한 음악이든 미가 있으면 결코 시끄럽지 않아요. 아름다움이란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이거든요. 앞으로도 그걸 열심히 터득하려고 음악 속에서 표현해 내려고 합니다. 거의 뭐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지...”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코리아블루스씨어터에서 만난 블루스 마에스트로 김목경은 자신의 60년 인생을 반추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처음 블루스에 빠진 건 청계천에서 우연히 산 빽판(불법복제 레코드)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김목경은 “당시 앨범 자켓이 멋있어서 구입한 2장짜리 앨범(블루스 기타리스트 컴플레이션)을 접하고 ‘에릭 클립튼,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등이 이 음악을 따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드킹, 알버트 킹, 알버트 콜린스, 비비킹 등의 연주를 들으면서 기타의 모든 해답이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블루스에 빠지게 됐다”며 한국 최고의 블루스맨 탄생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2003년 미국 멤피스 빌스트릿 뮤직 페스티벌에 동양인 최초로 초청돼 3일 연속 무대를 가졌다. 축제 기간 매일 한 시간씩 8곡 내외를 연주하며 한국 블루스맨의 기타를 본고장에서 선보인 것이다. 당시 그의 세션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라는 흑인 맹인 블루스맨의 백밴드였다고 한다.

김목경은 “첫날 야외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러 막 밀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옆에 건반 치는 미국 친구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너 최고였다’고 칭찬해주더라. 옆 동네인 네슈빌 연주자들도 명함을 주면서 같이 연주하자고 했는데, 만약 그때 계속 미국에 남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며 감격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멤피스 공연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그땐 한국인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나를 태우고 다니던 로드매니저와 시장에 갔는데 한국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내가 공연하러 왔다고 하니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자고 있는데 그분에게 전화가 와 로비에 내려가 보니 양은도시락을 주시더라. 그 아주머니의 정성에 꽤 많이 감동했다”고 언급했다.

멤피스 공연 이후 미국, 일본,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마카오 등 세계 각지에서 연주를 펼친 김목경은 2013년 미국 펜더 본사를 방문해 ‘펜더 커스텀샵 시그니처 기타를 증정받는 영예로 안았다. 1946년 설립된 펜더(Fender)는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의 원형을 만든 세계 최대의 기타 메이커로 최고 기량을 가진 전 세계 기타리스트들에게 특별 제작한 시그니처 기타를 증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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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악대에 있을 때부터 펜더를 쳤었다. 이후 1985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으로 펜더 기타를 샀다. 기타만 칠 때는 깁슨도 쓰지만, 노래를 같이 부르다 보면 볼륨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 습관을 들인 펜더 기타를 가장 많이 사용한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또 “기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제일 좋은 건 옆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타다. 이런 게 기타 홀릭, 중독이다. 기타가 걸려 있는 거 보면 안 쳐봤는데도 어떤 음인지 짐작이 된다. 그렇게 해서 많은 기타를 샀다. 가장 많이 치는 기타는 ’올드펜더 68년 오리지널‘”이라고 덧붙였다.

김목경은 제대로 된 블루스를 배우기 위해 1984년부터 1989년까지 6년간 홀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거기서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하루 4가지 일을 했다. 우선 새벽 6시에 일어나 런던 히드로 공항에 간 다음 한국 여행객들을 호텔까지 안내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 오전 11시에 접시를 닦으러 가고 오후엔 페인트칠을 했다. 밤이 돼서야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쳤지만 육체적으로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무한한 에너지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유학 생활 후반엔 여태껏 모은 돈으로 3층짜리 건물을 렌탈, 방 하나는 자신이 사용하고 5개 호실을 재임대하는 것으로 생활했다고.

김목경은 1990년 한국으로 돌아와 1집 ’Old Fashioned Man‘을 발매한다. 여기엔 김목경의 대표곡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영국 생활에서 만든 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내 인생‘에서는 당시의 회한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는 이후 2집 ’김목경 2 Blues(1996년)‘, 3집 ’Living With The Blue(1998년)‘, 4집 ’김목경 Vol.4(2000년)‘, 5집 ’Rock Me Blues(2004년)‘, 6집 ’Blues‘ 등 6개의 정규앨범과 ’Live In Concert(2002년)‘, ’20주년 기념 라이브앨범(2010년)‘ 등 2개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이들 앨범엔 블루스는 물론 컨트리, 포크, 록,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혼재해 있다.

이에 대해 김목경은 “음반에 굳이 정통 블루스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블루스는 라이브로 들으면 되지 않나. 음반을 발매하는 이상 대중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이번에 정규 7집과 커버 앨범을 내려고 한다. 7집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지만, 커버 앨범은 순수한 블루스곡들로만 채워져 있다”면서 “총 10곡 중 5곡은 직배사가 있는데, 나머지 5곡은 저작권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 알아보니 보통 현지 매체에 3개월 이상 광고를 내야 한다는 데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음반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커버 곡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김목경은 “블루스는 같은 곡이라도 그 사람만의 개성이나 느낌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적인 블루스를 고집한다는 건 어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봐야 그것도 카피다. 가장 편한 건 명곡을 재해석해서 하는 것”이라며 소신을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라이브에서 자작곡보다 커버 곡을 훨씬 많이 선보인다. 비율로 보자면 7대 3 정도다. ’부르지마‘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으러 티켓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커버 곡들만 연주할 수 없지만, 관객들이 점점 자신의 블루스 곡을 알아가고, 또 공연장을 찾아줄 때가 가장 큰 보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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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김목경은 최소 하루 한 시간 이상 연습을 하고, 한 달에 2번 이상 무대에 선다. 재작년까지 개최된 춘천 CC 블루스엔 매해 참가했고, 영주 블루스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자신이 직접 음악감독을 맡아 블루스의 국내 전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정규 1·3집과 ’Live In Concert‘ 등 총 3장을 레코드판(LP)으로 재발매했다. 김목경의 음반을 구할 수 없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발매되자마자 금방 절판돼 지금은 구입하기 어렵다.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 2‘ 앨범에 수록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경우 서유석, 홍민, 송대관, 서수남, 박완규, 아이유 등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커버했다. 김목경은 “곡을 원하면 주는 편이다. 김광석의 경우엔 녹음할 때 직접 가서 보기도 했다”며 동료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는 김목경이 1집을 발매한 후 어느덧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그는 “1990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1997년까지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영국과는 여건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방송에선 블루스라고 소개하는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부터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긴 세월이 흐른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목경의 기타 철학은 확고하다. 기타음 또한 말과 같다는 것. 처음부터 소리가 크고 화려한 연주를 펼치는 것보다는 스토리의 기승전결처럼 기타도 설득력 있게 천천히 호흡을 주면서 쳐야 한다고.

그는 블루스만의 매력에 대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일단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기타를 통해 표현,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타음 역시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안 좋게, 슬프면 슬프게 나올 수 있는 거다. 관객의 눈을 보면 공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우선 자기 자신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도 감동을 받다. 재즈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어렵다. 비유하자면 재즈는 추상화고 블루스는 그보다는 정형화된 반추상화”라고 말했다.

김목경은 신중현, 한대수, 산울림 등 선배 뮤지션들의 헌정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성장기에 음악적인 영향을 준 선배에 대한 경의라 할 수 있다. 이들과는 음악적 교류는 물론 개인적인 관계까지 돈독하다고 한다.

그는 또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미국인들만큼 연주할 수 있느냐다. 일본 뮤지션들은 그만큼 하는 애들이 있다. 한 가지만 파는 일명 오타쿠식이라 가능하다. 페스티벌 같은 데서 눈 감고 들으면 완전 버디 가이인데 본업은 튀김집 사장이다. 우리 후배들도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넓은 무대에 나가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음악은 양심이다. 자기가 부족한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블루스는 8·12·16 소절 안에서 메이저·마이너·팬타토닉 스케일 등을 이용해서 하는 건데 이걸 우습게 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거다. 진짜 프로가 되려면 우선 그들과 비슷한 선까지 올라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목경은 후배들을 지원하기 위해 블루스파운데이션 한국지부인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김항석 대표에게 가장 먼저 설립 제안을 한 것도 그이다. 이를 통해 작년 처음 서울 블루스 페스티벌도 개최하고 본토에서 열리는 블루스 첼린지에 후배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무대에 서서 앞으로 500번 정도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거다. 특히 기회가 된다면 1년 만 미국으로 건너가 컨트리 기타를 배우고 싶다. 컨트리엔 재즈, 블루스, 록 등이 다 녹아 있기 때문에 굉장히 오묘하다. 그 후엔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을까”라며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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