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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욕망하는 ‘에우리디케’

[칼럼]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욕망하는 ‘에우리디케’

기사승인 2020. 01. 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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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예술영화이자 퀴어 장르로 범주화되어 소수의 관객층에게만 어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개봉 10일 만에 7만 명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고 전해진다.

절찬상영 중인 영화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가능한 줄거리를 자제하고 그 모티브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의 중간에, 주요 등장인물인 3명의 여성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대한 신화를 낭독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감상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에,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극 중 세 여인의 신분은 다르다. 귀족가문의 딸, 여류화가 그리고 낮은 신분의 하녀가 그녀들의 계급이다. 그러나 그들은 친구라도 된 것처럼 신화에 대해 저마다 나름의 해석을 하며 호불호를 표현한다. 이들 간엔 묘한 전복의 기운이 흐른다.

우리에게 그리스신화는 어려서부터 익숙한 스토리이다. 유년시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통해 금기와 인내를 배운다. 금기를 어겼을 때 돌아오는 응징은 가족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가족이란 많은 경우 어머니를 일컫는데, 절대적인 여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화엔 모성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암울한 상상이 넓게 포진돼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절대적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잃지 않기 위해서 금기를 받아들이고 인내를 감내해야 한다.

사실 이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끊임없이 시도돼 왔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의 탈구축적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오르페우스에게만 맞춰져왔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금기를 깬 오르페우스는 ‘전복적’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영화에서도 대화를 통해 이와 같은 관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오르페우스가 ‘시인의 선택’을 하였다는 해석이다. 신화에서 시인이자 리라연주자인 그는, 이후 여인을 멀리하고 님프와 남자들과만 교류하며,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과오로 아내를 잃은 것에 대해 자책하고 비극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린 샴마 감독이 그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이전의 해석과는 사뭇 다르다. 감독이 선택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후반은 혁명의 기운이 절정에 이른 시기다. 샴마는 이때를 소환하여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 신화를 비튼다. 감독은 기존에 수동적으로만 그려져 왔던 에우리디케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그녀는 이제 ‘시선의 대상’에서 뒤돌아볼 것을 명령하는 ‘호명의 주체’로 변화한다. 동성애로 표현된 그들의 관계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며 한편으론 수평적 관계에 대한 실천이다. 이후 극중에선 서로가 뒤돌아볼 것을 주문함으로써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이로써 영화의 배경이 되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한다.

영화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그리고 낭만주의가 혼재한 대변혁의 시간과 공간을 소환해, 개인으로서 여성과 예술가를 대위시킨다. 이로써 개인과 예술가의 각성이 일어난 시기가 18세기라면 이 시기에 기록된 개인과 예술가는 ‘남성’이었다는 점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 즉, ‘욕망하는 에우리디케’가 여전히 미래형은 아닌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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