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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피눈물 中 교민들, 패배해서는 안돼

[기자의 눈] 피눈물 中 교민들, 패배해서는 안돼

기사승인 2020. 02. 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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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와 금세기에 네, 다섯 번 격변 당하고도 버텨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별 희한한 일을 다 당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한때 100만명을 바라본다고 했던 중국 내 한국 교민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기자는 20여 년 동안 베이징에서 특파원으로 주재하면서 이런 케이스를 대략 네,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다.

왕징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왕징(望京) 코리아타운의 전경. 한때는 곳곳의 점포들이 고객들로 붐볐으나 코로나19가 휩쓰는 지금은 적막강산이 돼 있다. 코리아 포비아도 동시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제공=교민 신문 베이징저널.
첫 번째는 1997년 말에 갑자기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있었으니 당시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교민들의 상황은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한 집 건너 한 집이 눈물을 흘리면서 철수하는 짐을 싸는 것이 당시 풍경이었다. 다행히 IMF 사태는 국민들의 피를 깎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자찻했으면 망국노가 될 뻔 했던 교민들 역시 겨우 기를 펼 수 있게 됐다.

2003년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연초부터 대륙을 강타했다. 이 때도 많은 교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짐을 싸고 한국으로 철수해야 했다. 다행히 모든 책임이 중국에게 있었던 이때는 중국인들의 혐한 감정은 별로 불거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몇 번 더 교민 사회에는 위기가 있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및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로 인한 한·중 간의 갈등,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등으로 인한 위기를 더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드디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 사태가 터졌다.

당초 이번 사태는 중국 내의 일로 여겨졌다. 이번 달 중순까지는 진짜 그랬다. 그러나 하늘이 야속하게도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쳤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 환자 수로는 한국이 중국을 넘어서게 됐다. 그러자 중국 내에서 급속도로 코리아 포비아(기피) 조짐이 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한국에서 들어온 교민들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기가 막힌 상황이나 현실적으로는 막을 방법이 딱히 없다. 중국 중앙 정부도 지방 차원에서 그러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4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는 2월의 마지막 날인 29일 아침 일찍 기자는 웬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의 관리 사무실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최근 한 달 내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느냐는 반문조차 못하고 없다고 했다. 그 다음은 더욱 기가 막혔다. 여권번호를 물었다. 완전 완장 찬 자경단 수준이었다. 피눈물이 났으나 자포자기식으로 대충 둘러댔다. 순간 비로소 중국 전역에서 격리되면서 불이익을 받는 교민들의 분노에 찬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은 처절하게 당한 수모를 잊으면 안 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인들에게 똑 같이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졸장부의 하책에 불과하다. 최고의 상책은 지금의 수모를 교훈으로 승화시켜 다시는 비슷한 우를 범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이번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중국 내 교민들이 지금 흘리는 피눈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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