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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블랙코미디 이상으로 다가오는 ‘왝 더 독’

[칼럼]블랙코미디 이상으로 다가오는 ‘왝 더 독’

기사승인 2020. 05. 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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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배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한 ‘왝 더 독’(Wag The Dog, 1997)은 가짜뉴스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한 코미디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뉴스로 뉴스를 덮는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찝찝한 기분에 영 개운치가 않다.

영화는 ‘현실의 기호’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 속의 에피소드들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영화 ‘왝 더 독’은 풍자를 넘어 일종의 조소와 조롱으로 다가오게 된다.

우선 스토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재선을 목전에 둔 대통령이 성추문에 휩싸인다. 2주의 시간이 지나면 현재 지지율로도 충분히 선거에 압승하지만, 이젠 장담할 수 없다. 보좌진들이 대책을 강구하고 긴급히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 분)이라는 브로커가 호출된다. 이후 브린팀에 합류한 스탠리 모스라는 영화제작자는 완벽한 기획으로 전쟁의 명분을 쌓을 가짜뉴스를 만든다. 그리고 좌충우돌하는 사이 그들은 기어이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킨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된 시점은, 정확하게 빌 클린턴의 재선운동기간과 당선시기에 맞춰져 있다. 누가 봐도 클린턴과 린다 르완스키의 성추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한 영화제작자 스탠리 모스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을 연상시킨다. 큐브릭이 아폴로 11호 달 착륙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풍문은 사회일반에 퍼진 이야기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음모론을 떠오르게 함으로써 사회전반에 걸친 정치이슈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한다.

‘왝 더 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B3 폭격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실체가 없는 303 특전대가 등장한다. 게다가 극중 ‘전투에서 생환한 것’으로 기획된 슈만상사는 실제는 강도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로 군교도소에 수감 중인 범죄자일 뿐이다. 잘못을 저질러 교도소로 간 남편을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로 나무에 매단 손수건이야기가 구전되다가, 70년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개재된 이후 일종의 신화가 된 것을 풍자한다. 영화에선 낡은 구두를 나무에 거는 것으로 변형됐다.

또한 미국특유의 컨트리음악이 겉으론 낭만과 목가적인 것들의 가치를 노래하지만 은연중에 청교도이즘에 기초한 미국식 가족주의라는 보수적 가치를 예찬하고 있었음을 비꼰다. 그 외에도 극중 기획자들이 유명 뮤지션들을 모아 집단으로 부르게 하는 노래는,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공동으로 작사·작곡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와 닮아 있다. 1985년 아프리카인들을 돕고자 구성된 ‘USA for Africa’가 부른 이 노래의 가사는 인류애 자체라 할 수 있다. USA가 ‘United Support of Artists’라고는 하나 그 누가 그렇게 보겠는가?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무드를 가속시키기 위한 문화예술분야의 척후병 역할이라는 시각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예언서가 됐다. ‘왝 더 독’이 개봉되고 4년 후, 앨 고어가 득표수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었음에도 부정선거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부시정부는 밑바닥을 찍은 지지율을 극복하고자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킨다.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여유롭게 재선에 성공한다. 이후 미국의 입장은 “가서보니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멘트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어진 중동의 혼란과 난민이 속출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 코로나사태로 몸살은 앓고 있는 미국은 올해 11월 3일, 5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왠지 영화 ‘왝 더 독’이 블랙코미디 이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우에 불과할까?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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