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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 ‘엑시트’, 위험사회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칼럼]영화 ‘엑시트’, 위험사회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기사승인 2019. 08. 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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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영화 ‘엑시트’는 재난영화 특유의 영웅서사라는 어깨 뽕이 빠져있다. 액션은 시원했고 한편으론 뭉클했다. 희생제의의 최루성 눈물도 없었다. 기존 장르와 차별화된 연출로, 감독은 신뢰가 깨진 사회에서 우리 자신은 익명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라는 희망을 상기시킨다. 정의를 구현하고 총총히 사라지는 이름 없는 무명자로서 강호의 영웅은 바로 우리들 주변에 있고 또 나 자신이기도 하다. ‘신뢰가 깨진 사회를 구하는 것은 신뢰다.’ 이와 같은 불가능한 역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러한 신뢰의 문제를 학문의 영역에서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그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고도의 신뢰사회로 보았다. 그러나 긍정적인 뉘앙스와는 달리 그가 말한 신뢰사회란 언제든지 그 고리가 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험사회라는 것이다. 이 같은 위험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일상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가공할 만하다. 벡은 성공가도를 달려온 서구의 근대화와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후기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인류로 하여금 시스템에 대해 맹목적 신뢰를 부여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반성과 성찰의 부재로 과잉신뢰는 부메랑이 되어 지구적인 위험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현대사회에 대한 냉철한 그의 비판은 오늘날 자주 현실에서 목도된다는 점에서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에서도 극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가스 테러 역시 깨진 신뢰에서 기인한다. 벤처기업의 공동창업자였던 화학자는 회사로부터 배신당하고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바로 그 추락지점에서 벌인 무차별적인 테러는 신뢰를 저버린 회사만을 향하지 않고 전 방위적인 공격으로 확전된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뒤엉켜 도시는 마비되고 불타오른다. 이때 도심의 블록과 블록 사이를 가득 메운 살인 가스는 강력한 상징이다. 사회적 반의 무너진 신뢰는 점점 상층부로 조여 들어온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와해되는 장소는 피라미드의 아래 부분에 위치한다. 정점의 와해는 대체 가능하지만 저부의 해체는 사회 자체를 유지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한편 극의 초반부 카메라 앵글은 동네 놀이터 철봉에서 시작해 점진적인 방식으로 위를 향해 나간다. 스카이라운지에서 고층빌딩의 옥상으로, 수평과 수직으로 치닫는 카메라의 트래킹 쇼트는 극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타워크레인에 도달해서야 멈춘다. 이들 장면들이 구현하는 캐릭터와 공간의 조합은 탁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위를 지향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마치 땅의 자양분을 받아 위로 솟구쳐 오르기를 갈망하는 나무들과 같다. 더욱이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서 숨 쉬는 젊은 현대인에겐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지향점이다. 영화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루저’란 이름의 낙오자였던 주인공이 사람들을 구하고 연인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은유로서 정상’에 오르고 또 오른다. 만약 그의 등반 실력이 발휘될 기회조차 없었다면 그가 구조했던 생존자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영화의 마지막에 클로즈업되는 ‘카라비너’는 두 남녀주인공 간의 사랑을 넘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신뢰의 고리’를 의미한다. 분명하게도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과잉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인 문제를 위험으로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해결책 역시 신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연대와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기회의 균등이다. 배경이 아닌 다양한 개성과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사회의 리더가 되는 사회야 만이 지속 가능하다. 군집의 다양성을 유지해야만 사회 자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뉴스에는 고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타워크레인에 올라 S.O.S 신호를 보낸 것과 동일한 시그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호를 잘 캐치하고 상호 간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만이 내재된 재앙으로서 위험사회를 극복하는 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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