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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족감정, 국민이성

[칼럼] 민족감정, 국민이성

기사승인 2019. 08.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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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광복 후 혼란스러운 해방공간에서 이승만은 국가를, 김구는 민족을, 김일성은 이념을 선택했다. 국가를 선택한 이승만은 대한민국에 자유와 안보의 새 길을 열었고, 민족을 선택한 김구는 북에서 배척당한 뒤 남한에서 민족혼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념을 선택한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주체사상으로 변질시켜 봉건왕조의 옛길로 뒷걸음쳤다.

이승만에게는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비난이 따라다닌다. 물론 친일분자들을 척결하지 못한 채 반민특위가 해산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다만 우리 자체의 인재 풀이 극히 빈약한 상황에서 호전적인 공산세력과 대결해야 했던 시절, 악질적 친일매국노가 아니라면 비록 일본 문물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도 실무능력에 따라 나랏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안타까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도 초기의 주요 간부 중 상당수가 친일인사였다.

이승만은 초대대통령 취임 직후 독도를 우리 관할 아래 두는 평화선을 선포한 뒤, 평화선을 넘어온 일본 어선들을 격침하고 일본인 어부 3900여 명을 체포·구금했다. 또한 미국의 끈질긴 회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 체결을 끝내 거부했다. 그의 대일 정책은 확고한 반일이었다. 말기의 독재로 과오를 남기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을 선택한 이승만의 건국정신이 자주·독립과 자유·민주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필이면 광복과 건국의 달 8월에 몰아닥친 일본의 혐한(嫌韓) 광풍이 우리의 반일감정을 거칠게 불러내고 있다. 양쪽의 국민이성은 제 목소리를 낼 틈이 없다. 적으로 매도될 뿐이다. 과거사의 반성에 인색한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민족감정은 이제 몇 마디 사과발언이나 엔화 몇 푼으로 해소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일왕의 무릎을 꿇려도 시원찮을 만큼 분노와 증오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중이다. 그 펄펄 끓는 용암으로 저 못된 이웃을 쓸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분노의 열기를 추스르고 증오의 응어리를 풀어헤쳐 미래의 좋은 이웃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나쁜 이웃은 피할 수 있어도 나쁜 이웃나라는 피할 길이 없다. 일본열도가 침몰되지 않는 한, 우리를 위해서도 나쁜 이웃나라를 좋은 이웃나라로 바꿔가야 한다. 총칼 들고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닌 이상, 미워도 대화와 타협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민족반역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친일파라면 많을수록 좋다.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친일파를 만들어야 한다니, 누구의 말인가? 다름 아닌 김구의 말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도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3국 연대’를 역설했다.

누군가의 2분법에 따르면 그 걸출한 독립투사들도 친일파 소리를 들어야할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민족정신은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었다. 침략과 식민지배의 원죄는 결코 잊지 않되, 항일의 과거를 넘어 극일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통사적(通史的) 성찰이었다. 이것이 붉은 이념을 선택한 북에 맞서 자유·민주의 국가, 자주·독립의 민족을 선택한 선각자들이 국민이성에게 남긴 교훈이다. 나쁜 이웃을 피하려고 악당을 불러들일 수는 없다. 핵무기를 거머쥐고 자유·민주·인권을 짓밟는 세습독재세력과 함께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것만큼 헛된 꿈이 있을까?

휴전선 너머를 주시하는 것은 군인의 눈길이지만, 대한해협 너머를 응시하는 것은 외교관의 시선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맞을 짓 하지 말라면서 연달아 신형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에게는 끝도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는 반면, 일본에게는 죽창 든 의병까지 불러내며 전투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어느 여권 인사가 자인했듯이 선거를 앞둔 감성적 득표전략일 수는 있어도,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이성적 정책은 아니다. 불길처럼 솟구치는 우리 민족정서의 결기가 냉철한 국민이성의 금도(襟度)를 벗어남이 없이 광복과 건국의 원대한 뜻을 오롯이 지켜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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