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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병역, 성,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

[칼럼] 병역, 성,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

기사승인 2018. 07. 0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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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우리 사회에서 최근 한편에서는 개인의 선택이나 감정에 대해 그것이 비록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흐름이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결정에 개인들이 따르도록 강제하려는 흐름도 강하게 등장하는 묘한 모순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왜 한 분야에서는 개인적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거와 확연하게 다르게 공동체의 목적보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등장한 최근의 사례는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수용하고 대체복무를 수용하려는 사법부의 태도 변화이다. 공동체의 안보라는 공동 목적을 위한 대한민국 남성의 병역의 의무는 기본적으로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이제 종교나 신념 상의 이유로 총기를 드는 것을 거부하는 데 대해 예전과는 달리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는 듯하다.

한 때 우리 사회를 달군 미투 운동의 경우에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려는 생각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성적 스캔들이 벌어졌더라도 그게 자기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문제 삼으려 하지 않지만, 우월한 지위를 악용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강력하게 단죄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되어 해명할 처지인 사람들이 대개 그 관계가 자발적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노동과 관련한 결정에서는 개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보다는 개인들이 일률적인 사회적 결정에 따르게 하려는 분위기가 이런 저런 이유로 강화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정책화한 최저임금의 인상이나 ‘저녁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실행하는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이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어떤 임금에 얼마동안 일할 것인지에 대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여지는 법으로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을 정하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약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더라도 개인들이 받아가는 소득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면 이런 자기결정의 문제는 하찮은 토론주제에 불과해질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직장에서는 더 집중적으로 일함으로써 근로시간을 줄여도 생산성이 줄어들지 않아서 기업들도 기꺼이 종전과 동일한 수준의 급여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들은 지갑이 얇아지지 않은 채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량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론에 따르면 기업이 존재하게 되는 것은 ‘복사 10장 하기’ ‘전화 받기’ 등 무수한 구체적 용역계약들을 맺으려면 많은 ‘거래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 동안 특정한 종류의 일을 하는 장기 고용계약을 맺는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확보한 노동시간이 생산성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직업병 때문인지 최근 식당에 가서 음식을 날라 오는 종업원이 그리 바빠 보이지 않으면 그에게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는 데 환영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도 “줄어든 시간만큼 급여가 줄어들어도?”라고 되물으면 고개를 젓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여가보다 돈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근로시간 규정이라는 사회적 결정 혹은 강제로 이들의 여가시간과 근로시간의 배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해도 되는지 그게 과연 이들을 돕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기결정권은 병역과 성(性)뿐만 아니라 노동과 관련해서도 폭넓게 허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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