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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증권업계 ‘녹취포비아’ 곤욕

[취재뒷담화]증권업계 ‘녹취포비아’ 곤욕

기사승인 2019. 11.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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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올겨울 들어 ‘녹취포비아(녹취 공포증)’가 퍼지고 있습니다. 故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의 직원에 대한 폭언 녹음파일이 언론에 공개된 후 불어닥친 후폭풍 중 하나입니다. 증권가 곳곳에선 권 회장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몰래 녹취’에 대한 불신도 커지는 모습입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요즘 증권가에서 ‘녹음하는 거 아니지?’라고 확인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우리 회사만 해도 회의 시 휴대전화 지참 금지라는 방침이 새로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노조 또한 “몇몇 직원들이 윗선의 부당한 지시나 막말 등의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증권업계에 퍼진 녹취포비아의 발단은 ‘직장 내 갑질’에 대한 인식 변화일 것입니다. 올해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등 지위를 앞세운 직장갑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경하게 바뀌었습니다.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불이익을 주거나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는 등의 행위가 직장갑질에 해당되죠. 법 시행과 함께 신고와 처벌 절차도 마련됐습니다.

신고 시 녹취된 음성파일은 위력적인 증거 자료가 됩니다. 상대방 몰래 갖고 있던 녹음파일을 폭로하는 순간 당사자는 꼼짝 못하게 됩니다. 다급한 항변도 통하지 않습니다. 육성이 그대로 세상 밖으로 드러난 상황에 그 당시 앞뒤 맥락을 설명한다고 해도 녹음파일을 폭로한 사람의 의도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적습니다.

다른 업종보다 특히 증권가에서 녹취포비아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증권업 문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몸 담고 있는 직장에 대한 충성도보다 본인을 더 대우해주는 곳으로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증권업만의 문화가 주효한 것입니다. 증권업계의 높은 이직률은 고착화된 지 오래입니다. 이직이 자유롭기 때문에 ‘난 언제든지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증거를 남겨두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몰래 녹취’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갑질 우려로 시작된 이 녹취 행위가 동료들을 향한 불신으로만 커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노사 간에 신뢰와 믿음을 키울 필요성도 있습니다. 지금은 회사 역시 복종만 강요하지 말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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