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당대의 풍정(風情)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갈대의 순정'이 발표된 1960년대 중반은 6·25 전쟁 후 출렁거리던 우리 현대사의 격랑이 조금은 잦아들던 시절이었다.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그리고 5·16군사정변이 잇따르면서 자유당과 민주당 정권이 명멸하고 공화당 정권이 경제개발의 기반을 다지던 때였다. 정치적 혼란 속에 사나이들의 인정(人情)에도 배신과 의리와 타협이 풀썩거렸다.
박일남의 남저음(男低音) 목청에 실은 '갈대의 순정'은 이 같은 부박한 시정(時政)과 기회주의적 세태를 은유한 것일 수도 있다. 작사가 오민우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이란 시의적절한 노랫말도 그렇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굴곡진 풍속 아래 가변적인 남심(男心)을 '사랑에 약한 사나이 마음'으로 비유한 노래는 대중의 가슴에 와닿았다. 여기에 박일남의 매력적인 저음이 호소력을 더한 것이다.
박일남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 또한 곡절이 많았던 젊은 날의 여정에서 무르익은 것일까. 공부보다는 운동을 좋아했고, 부산의 이름난 해변을 전전하며 주먹으로 다져온 체력과 뚝심이 중후한 풍모와 성음(聲音)에 스며있다. 울퉁불퉁한 행보가 초래한 크고 작은 심신의 상처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연예의 끼를 버리지 못한 그는 유랑극단을 따라 가출하고 말았다.
방랑생활을 일삼으며 적잖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박일남은 동국대에 진학하는 학구열을 보였다. 가요 '갈대의 순정'과의 인연은 그의 인생에 큰 분수령이 되었다. '갈대의 순정'으로 데뷔할 무렵 그는 20대의 청년이었다. 작사·작곡가 오민우는 애초에 이 노래를 당시 인기 가수 정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고 결국 박일남의 저음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한 편곡까지 했다고 한다.
영혼을 울리는 듯한 애잔한 목소리는 때마침 격변기의 민심을 사랑에 약한 남자의 마음으로 대변한 중의적(重義的) 변주곡(變奏曲) '갈대의 순정'을 히트곡의 반열에 올렸다. 1966년 킹레코드사에서 발매되자마자 30만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이른바 대중가요사에 등장한 '갈대'의 위세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등장한 것처럼 바람에 날리는 갈대는 원래 '여자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일남의 노래에서는 갈대를 '사랑에 약한 사나이 마음'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은 시류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또 사랑에도 약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는지도 모른다. 갈대는 음악과도 필연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요정 시링크스(Syrinx)는 목신(牧神)인 판(Pan)에게 쫓기다가 강가에 이르자 갈대로 변신해 버렸다.
아쉬움에 젖어 있던 판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소리에 반해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팬플루트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오랜 관악기인 대금(大笒)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 또한 갈대와 연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갈대의 속살을 청공에 붙여서 내는 떨림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화사한 봄꽃이 여성의 자태라면 갈대의 은빛 물결은 그윽한 남성적 선율이다. 그래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조향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