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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책상 위에서 계획하는 이론상의 절대전쟁(Absolute War)과 실제전쟁(Real War)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제시한 최초의 군사 전략가였다. 그에 따르면 "전쟁에서는 모든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것도 어렵다." 왜 그럴까? 만일 정쟁지도자가 결코 전투를 직접 체험하지 않은 초보자라면 그는 끊임없이 경험하는 이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그는 사령관에게는 왜 탁월하고 예외적인 능력이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의 수행에서 모든 것이 단순해 보이고 필요한 지식은 대단한 것 같지 않다. 전략적 선택은 아주 분명해서 비교적 고등 수학의 가장 간단한 문제가 아주 인상적인 위엄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실제로 발발하면 어려움들이 선명해지지만 그러나 이런 조망의 변화를 초래하는 미리 내다보지 못한 지배적인 요소를 서술하기는 아주 극단적으로 어렵다. 그것은 모든 군사작전의 효율성을 방해하는 바로 마찰(friction)이다. 군사전략의 원칙들은 결코 어렵지 않고 단순하다. 그러나 사령관이 군사전략을 철저히 내면화하지 않고 엉성한 전략적 개념들만을 기억하고 전쟁에 적용한다면 마치 외교관이 어설픈 외국어 실력으로 국가 간 외교와 협상을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러나 마찰 그 자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평지를 걸어갈 때와 같은 속도로 물 위나 모래밭을 걸어갈 수 없다. 또한 날씨나 지형적 조건 등으로 인해 계획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면 전체적인 계획이 틀어진다. 이것이 마찰의 무서운 작용이다. 전쟁에서 마찰은 훨씬 더 심각하다. 마찰에는 일반적 마찰과 우연적인 마찰 등 2가지 유형이 있다. 일반적 마찰은 전쟁의 분위기를 만들어 그것들을 저항의 수단으로 전환하는 요소들이다. 여기에는 위험성, 신체적 분투, 군사정보의 불확실성과 우연적 마찰을 포함한다. 일반적 마찰의 요소들 가운데 위험성과 신체적 분투가 가장 영향력이 크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전쟁을 다른 정치적 혹은 사회적 활동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 짓는 것인 반면에 다른 마찰의 요인들은 대체로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전쟁을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위험성이 처음에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러나 이런 기분은 전투현장에 가까이 가면서 변한다. 전선에서 우리들은 장교들이 은폐함으로써 자신들을 총알과 포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보존의 본능이 자아 극기와 의무감과 경쟁한다. 갑자기 누군가가 총을 맞거나 포격에 당하면 우리는 더 이상 차분하고 침착할 수가 없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부상당하고 쓰러진 전우의 목격은 초보자에게 충격을 주어 그의 위험성에 대한 처음의 감정은 그것을 피하려는 강렬한 욕망에 의해 대치된다. 오직 비상한 개인만이 그런 인상에 처음으로 노출되었을 때 견디면서 여전히 판단력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위험에 좀 더 익숙하게 되지만 그러나 우리의 인지와 판단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을 결코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신체적 분투도 적어도 위험성 만큼이나 인지와 판단 능력을 해친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추위, 미치게 하는 더위와 갈증, 그리고 기력을 떨어뜨리는 배고픔과 피로의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은 객관적 분석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하는 결정은 자기 보존을 위한 인간의 지구력과 본능이 작동하는 긴장된 고난의 조건에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 강도와 영향에서 변화무쌍한 신체적 분투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령관의 결정과 병사들의 전투수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추산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작은 어려움들이 쌓이고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마찰을 경험한다. 결코 실제로 예상하지 못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사건들이 서로 결합되어 전쟁수행의 일반적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뜨려 항상 의도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전쟁수행은 혼란스럽고 전투는 졸렬하게 이루어져 패배를 면하기 어렵다.
마찰(friction)은 실제 전쟁과 이론상 전쟁의 차이를 구별하는 요인들에 잘 들어맞는 유일한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군사전략의 오랜 역사에서 오직 클라우제비츠만이 발견한 중대한 개념이다. 군대와 그것에 관련된 모든 것인 거대한 군사적 기계(the military machine)는 기본적으로 아주 간단해서 관리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군사기계의 어떤 구성요소들도 한 조각이 아니며 각 부분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것의 각각이 마찰의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론상으로 그것은 아주 합리적으로 들린다. 각 전투 사령관들의 의무는 자기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다르다. 이론의 모든 결함과 과장이 전쟁에서는 즉시 노출될 것이다. 전투 부대는 병사들 개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에서 분리할 수 없는 위험들과 전쟁이 요구하는 육체적 분투는 그것들이 중대한 원인들이 될 정도로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마찰은 우연을 마주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한다. 직접 경험에서 배우지 않은 자는 상식적 지식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특이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모든 전쟁은 암초들로 가득한 어두운 바다나 안갯속과 같다. 사령관은 암초들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안갯속을 헤쳐 나가야 한다. 만일 어떤 중대한 불운이 나타나면 사령관은 최고의 기술과 개인적 노력과 최고의 정신상태를 필요로 할 것이다. 마찰의 이해는 대체로 훌륭한 장군이 소유할 것으로 가정되는 칭송할 만한 전쟁의 감각이다. 훌륭한 사령관은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능한 경우에 그리고 바로 이 마찰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기 작전의 표준적 성취를 위해서 그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확실히 최고의 장군은 마찰의 개념에 가장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가슴 깊이 새기는 자이다. 우연히도 마찰은 이론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힘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끊임없이 많은 사소한 장애물에 의해서 어수선한 영역에서 본능과 요령은, 즉 일종의 판단력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본능이 거의 습관이 되어 그는 항상 적절히 말하고, 행동하고, 또 이동해야 한다. 하늘을 나는 새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이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이 경험 있는 지휘관들이 크고 작은 문제에서 마치 전쟁의 모든 맥박처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찰은 분명히 쉬어 보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탁월한 사령관은 경험과 강력한 의지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는 다른 예외적인 능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마찰은 다른 능력이나 전쟁의 수행계획을 망쳐버릴 수 있다. 전쟁에서는 심리적인 요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들의 독특함에 기인하는 마찰이 전쟁의 일반적인 원칙들을 실천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쟁 수행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마찰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최선의 극복 방법은 전투경험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방적 소련군을 철수한 이래 전쟁의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국가이다. 우크라이나 군부도 전쟁경험이 없긴 마찬가지이지만 우크라이나 군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저곳에서 줄곧 전쟁을 해온 미군부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군이 그동안 군사훈련에 게을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직접 전투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는 차선책으로 실전에 버금가는 철저한 훈련의 축적이다. 이러한 마찰의 중요한 작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투 전에 미리 예리하게 간파하여 자기의 군대에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사령관만이 탁월한 전쟁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부는 이러한 마찰의 개념을 깊이 숙지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훈련을 거듭하고 있을까? 문재인 정권하에서처럼 군사훈련을 모두 시뮬레이션으로 대신한다면 그것은 컴퓨터 게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흥미를 위한 컴퓨터 게임이 아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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