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대중가요의 아리랑] <65> 이산(離散)시대의 상처 ‘기러기 아빠’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1.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210010005488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12. 10. 18:24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진 산골에/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 잃은 기러기// 하늘엔 조각달 강엔 찬 바람/ 재 너머 기적소리 한가로운 밤중에/ 마을마다 창문마다 등불은 밝은데/ 엄마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 잃은 기러기'

'기러기 아빠'는 아버지나 어머니 없이 살아가는 형제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1960년대는 6·25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시대였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 속에 전쟁 미망인과 고아(孤兒)들의 가련한 삶도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가요평론가 김영철은 그래서 "고아라는 사회적 생채기를 부각시킨 '기러기 아빠'는 전쟁의 트라우마가 깔려있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노래"라고 평가했다.

'기러기 아빠'는 한국인의 국제적 이산(離散)이 내포한 이별의 정서를 대표하는 곡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가족의 해체에 따른 가이없는 그리움과 깊은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한국인의 눈물겨운 사연을 표현한 것이다. 노랫말의 1절에서는 아빠의 부재 상황을 호소하고 있으며, 2절에서는 엄마가 없는 안타까운 사정을 고아로 전락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토로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는 1969년 방영한 같은 제목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이다. 드라마의 내용은 월남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전사에 따른 아들의 슬픔을 다룬 것이었다. 1970년에는 신영균, 윤정희, 김진영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작곡가 박춘석에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주제가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했다. 노래는 1960년대 이후 전개된 국제적인 이산 과정과 관련이 있다.
가요로 쓴 한국 현대사 '트롯의 부활'을 펴낸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월남전쟁과 중동건설 그리고 해외유학 붐으로 한국 사회는 국제적 이산에 직면하면서 가족해체라는 사회적 문제를 양산했다"며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가 바로 그것을 대변하는 대중가요"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노래는 방송금지는 물론 음반제작과 판매까지 금지당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패배적이고 자학적인 비탄조의 노래가 산업화 시대의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1987년에야 해금이 된 '기러기 아빠'는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과 함께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3대 히트곡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노래가 나올 당시의 '기러기'는 '부모 잃은 아이'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오늘날 통용되는 '기러기 아빠'는 조기유학 열풍에서 파생된 말이다.

1965년부터 본격화된 월남전 참전과 1972년부터 시작된 중동건설 붐으로 인한 대규모 국제적 이산가족의 발생은 우리 사회에 숱한 '기러기 아빠'를 양산했다.

나아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러기 아빠'는 어린 자녀의 해외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까지 먼 외국으로 보낸 후 홀로 남은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조기유학의 부작용은 철새가 된 숱한 기러기 아빠의 아픔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퇴근해서 귀가할 때마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과 아내의 따뜻한 미소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행복을 쌓아가는 게 평범한 아빠들의 일상일 것이다. '외로운 형제'가 '고독한 아빠'로 치환되는 가슴 아픈 시절, 대중가요 '기러기 아빠'는 현대사의 격랑이 빚어낸 아버지의 부재나, 외국 유학 등에 따른 오랜 별거로 혼자 남은 아버지의 고독을 통해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