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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근 칼럼] 가계부채 리스크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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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3. 21. 17:37

양원근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일본의 버블붕괴가 한창 진행되던 2007년 국내 은행 도쿄지점에 근무하는 약 20년차 중견 일본인 뱅커를 현지에서 만났다. 그는 일본 최고의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은행에 취직한 일본의 엘리트 직장인이다. 그런데 취업 후 도쿄에서 1시간 30분 출퇴근 거리의 주택을 11억원에 장기 모기지로 구입하며 그의 인생은 추락했다. 당시 주택가격은 3억5000만원 정도 했다.

그의 월급에서 앞으로도 오랜 세월 모기지가 뭉텅뭉텅 빠져나갈 것이다. 허공에 날아간 꿈과 희망이 보였다. 버블붕괴가 번듯한 젊은이를 나락으로 밀어 넣은 연결고리는 그의 부채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표현되는 레토릭이 부채를 짊어진 개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임을 목격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가계의 희생을 불러일으키는 잃어버린 세월을 피할 수 있을까? 규모, 증가율 등 여러 면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 규모는 1886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국제금융협회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GDP 대비 약 100%에 달해 조사대상 34개 국가 중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50%대에 머물던 동 비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복과 함께 2008년까지 80%대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후 주택가격이 안정되며 80%대를 유지하다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크게 증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주요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줄어들었으나 한국은 매년 8~11%씩 늘었다. 이와 같이 가계부채 규모의 높은 수준과 꾸준한 증가율은 이미 가계는 물론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약 60%에 달한다.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가 함께하는 이유다.

최근 금리가 상승하며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이미 부채를 과도하게 짊어진 가계의 이자비용이 증가하며 소비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향후 지속적으로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노출이 큰 건설사, 일부 제2금융권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전세제도 역시 가계부채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세보증금 총액을 2022년 1058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를 가계부채에 포함한다면 한국은 압도적으로 전 세계에서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가 최고 높은 비율의 국가가 될 것이다.

경제개발과정에서 전세제도는 일반 국민들에게 주택구입자금을 형성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세는 주택소유자가 주택을 임대하며 일정기간 사용 대가로 임차인으로부터 목돈을 차용하는 제도다. 즉 변동성이 큰 담보를 갖고 있는 관리되지 않는 사금융이다. 그러나 임대인의 부채는 임차인의 금융자산과 동일하기 때문에 가계부채 통계에 넣지 않고 종종 간과된다. 순기능만 부각이 되었으나 부채 기능도 크다.

2018년 실행된 주택임대사업자 활성화 대책 이후 전세보증금의 부채기능이 크게 부각되었다. 주택보유, 특히 다주택자의 보유 비용을 세금 등을 통해 크게 올리고 임대사업자에게는 대출, 세제상 혜택을 주었다. 누구든 적은 자본으로 전세보증금이라는 사금융과 금융기관 대출을 함께 활용해 주택구입을 사실상 무한정 늘릴 수 있게 지원되었다. 임차인으로부터 목돈을 차용하는 이른바 주택매수의 갭투자가 일반화되었다. 2018년 임대사업자수 59%, 임대주택수 39% 전년 대비 각각 상승했다. 이후 정책은 바뀌었지만 전국의 투자자들은 전세보증금과 제도권 대출을 더한 주택쇼핑의 맛을 잊지 못하고 이어갔다. 주택가격이 이미 상승압력을 받고 있을 때 신규 수요를 창출했다.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급기야 역전세, 영끌, 빌라왕, 전세사기,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부실화 등 우울한 어휘가 양산되는 토대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유사하게 버블 붕괴로 가계의 고통이 시작되었을까? 확실치 않다. 버블을 그 와중에 인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단지 향후 정부, 가계가 전세보증금의 부채기능을 소홀히 다루면 안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전세보증금 대출에 혜택을 주면 결과적으로 갭투자를 뒷받침한다. 가계부채 리스크를 이중으로 키우게 되니 신중해야 한다.

가계부채 리스크가 커질 만큼 커진 현재로서는 최대한 서서히 연착륙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커지지 않으려면 가계에 끊임없이 일자리가 제공되어 상환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하는데 가계의 이자부담 등으로 내수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결국 수출을 증대시켜야 한다. 경제규모에 비해 수출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수출 증대는 가계부채 연착륙에 희망을 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량으로 부실화된 기업, 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했다. 만약 가계가 대량 부실화되면 구조조정하기 정말 어렵다. 따라서 사전 예방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제도개선에 힘써야 한다. 가계부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택가격의 상승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가계부채 GDP 비율이 50%대를 유지하는 독일의 사례를 연구해 봐야 한다. 독일은 주택임대차 시장에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 미국, 일본, 북구3국, 스페인 등 많은 국가들이 겪은 주택시장 버블붕괴에 따른 위기를 겪지 않았다.

주택 경매건수가 크게 늘어나는 등 가계부채 리스크는 이미 현재화되고 있다. 주택거래를 활성화하여 가계의 부채 상환능력이 대출 당시와 달라졌을 때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매제도 등을 좀 더 투명하고 신뢰감 있게 운영하여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잃어버린 세월을 갖지 않도록 가계부채의 리스크 관리에 정부, 가계가 함께 나서야 한다.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운 과제다.

양원근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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