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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은 AI 물결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 9년 전 '세기의 대결' 장소로 낙점될 만큼 IT강국으로 인정받았지만, 이제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따라잡기도 버거워 보인다. '알파고 쇼크' 이후 우리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고 AI 생태계 조성에 소홀히 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우리도 AI의 중요성을 인지하긴 했다. 당시 정부와 기업은 AI R&D(연구개발) 투자 확대, 관련 법 제정, 스타트업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보여주기식 계획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대규모 예산이 배정됐지만 '남'과 차별화된 성과 창출엔 실패했다. 이미 알파고를 만든 구글부터 아마존, MS, 애플, 메타, 테슬라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점하던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현재 AI 산업은 데이터, 컴퓨팅 파워, 알고리즘이라는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한국은 이 세 분야에서 모두 경쟁력이 뒤처진다. 데이터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제로 인해 고품질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이 어렵다. 미국과 중국이 방대한 데이터와 유연한 법규를 통해 AI 학습의 근간을 마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컴퓨팅 파워에서도 뒤처진다. AI 모델 학습에는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필수적인데 한국은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GPU 제조업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자체 GPU 개발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도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 중이다.
문제는 AI의 물결이 어느 분야보다 더 빠르게 흐른다는 데 있다. 다음 단계가 아니라 그 다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일례로 AI 칩 시장을 진두지휘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CES 2025에서 양자컴퓨터의 미래를 주목했다. 20년 후에 상용화될 기술이 2025년 그의 머릿 속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 기업은 '양자컴퓨터'의 미래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AI는 한국의 미래를 가늠할 또 다른 바둑판이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신의 한 수'를 보여줬듯, 우리 기업도 '한 수'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이 AI 시대를 이끌 주역이 될지, 아니면 계속 변방에 머물 지가 여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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