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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칼럼] 연금개혁 하려면 잘못된 프레임부터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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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5. 01. 18:03

'제도파탄' 내는 안을 '소득보장' 하는 안으로 둔갑시키지 말아야
윤석명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의 투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연금 관련 주제들을 수차례 학습했었음에도, 학습 전보다 '더 지속이 불가능한 개편안'을 선호하는 결과가 나와서다.

필자는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연금개혁 논의과정에 참여해 왔다. 국민연금 경우에는 2003년(1차)부터 2023년(5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정계산위원회(이하 재정계산위)에 참여하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재정안정방안을 담당해 왔다.

5년 주기로 시행되는 재정계산제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건강상태를 점검하여,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1997년 기획단의 노력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10%포인트를 낮추는 개혁이 있었으나, 초고령사회에 대처하기에는 미흡한 개혁이라는 판단과 함께,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에서 재정계산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적기에 제대로 된 개혁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함이었다.

2003년 1차 재정계산은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절반의 개혁으로 불리는 2007년 개혁을 할 수 있었다. 한미 FTA 체결을 포함하여 여러 우파적인 행보를 보였던 참여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핵심지지층 다수가 떠나면서 참여정부 지지율도 급락했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서는 우측으로 가고 있다'고 할 만큼 비난이 거셌던 시절이었다. 정권 출범 당시의 캠프 핵심 인사들이 등을 돌리다 보니, 아무 관련 없던 필자가 참여정부 연금개혁 백서의 윤문작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참여정부 개혁 평가 보고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7년 개혁을 평가한 노무현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지속 가능한 연금제도 개선』에서 큰 시사점을 얻을 수 있어서다. "어렵게 연금법이 통과되었으나, 초고령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안정화 방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후소득의 적절성 차원에서 재정안정이 가능한 범위 안에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이, 추가로 소득대체율을 삭감하는 방향에 비해 바람직한 개혁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125쪽)." 동 보고서는 재정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을 40%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려야 하는데, 노후소득 적절성 차원에서는 40% 이하로 소득대체율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안정을 달성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5차 재정계산 결과의 핵심내용은 "예정대로 소득대체율은 40%로 하향 조정하고, 보험료를 15%로 6%포인트 더 올릴지라도 재정안정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0.7대까지 급락한 출생률이 1.21로 반등한다는 극도의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해서 도출된 결과다. 초저출산 가정이 우리 현실에 더 적합한 가정임에도, 초저출산 가정의 재정추계 결과는 제외함에 따라, 재정안정방안을 담당했던 필자가 거듭 공개를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극히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하였음에도, 지금보다 6%포인트 더 보험료를 인상한 '40% 소득대체율·15% 보험료' 조합으로도 재정안정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추계 결과가 나왔음에도, 연금을 더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청회를 앞두고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상향 조정하는 안을 재정계산보고서에 넣자고 해서, '꼭 넣으려고 한다면 위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필자가 주장했다. 투표 결과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안'을 소수안으로 넣어야 한다는 판정이 내려지자, 이를 주장하던 위원 2명이 위원회를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의 파행적인 위원회 운영과 사퇴 후 해당 위원의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들을 재정계산위원회의 회의록(특히 22차)을 통해 확인해 보기 바란다.

2023년 5차 재정계산 결과를 반영하여,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다수는 '40% 소득대체율·5% 보험료' 조합을 지지하였다. 재정추계위와 동일한 시기에 운영되었던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위에서도 똑같은 선택이 있었다. 2023년 1월 국회 특위 자문위 투표 결과, 15명의 위원 중에서 10명이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을 압도적으로 찬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위 자문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이 시민대표단 학습자료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의제숙의단 자문단 선정과 의제 선정을 위한 룰 세팅 때문이었다. 36개 이해관계자의 논의 결과라고 하면서, 시민대표단에게 전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안을 알릴 기회조차도 박탈해 버린 것이다.

꼭 알아야 할 핵심 정보는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사실과 다른 학습자료가 시민대표단에게 집중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학습 이전과 달리 학습 횟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시민대표단이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는 안을 선호하게 되었다. 재정계산위와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이 가장 선호한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시민대표단의 이러한 결정은 투명하지 못한 공론화위원회 운영과 함께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민대표단이 선택한 1안(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안)은 '지속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더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안'이다. 적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702조원 더 늘리는 안이라서 그렇다. 이렇게 시민대표단이 1안을 선택하게 된 것은 잘못된 프레임 설정에 기인한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으로 프레임이 짜여서다. 이러한 프레임은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모두가 가능한 선택지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2023년 5차 재정계산이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으로도 재정안정 달성이 어렵다고 판정했음에도 말이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연금논쟁 프레임'부터 바꿔야 한다. '재정안정 vs 소득보장'을 '제도유지 vs 제도파탄' 프레임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제도를 파탄낼 안'을 '소득보장 안'으로 둔갑시켜서다. 연금 논쟁 패러다임이 제대로 설정된다면, 시민대표단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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