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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총파업 대신 차라리 피켓시위 했더라면…

[이경욱 칼럼] 총파업 대신 차라리 피켓시위 했더라면…

기사승인 2024. 06. 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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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의사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의사라는 직업이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버림받을까 두렵습니다." 법원이 의대 증원과 관련, 정부의 손을 들어준 날 허탈해하던 한 개업의가 남긴 글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정부 계획은 국민 대다수가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의사 정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설문조사로 뒷받침됐다. 정부 계획은 심한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는 듯했다. 하지만 법원이 나서 의대 증원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양측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사가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게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과연 옳은 일인지 남들처럼 수시로 자문해야만 했다.

의사들이 정부 계획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처음부터 피켓 시위 등 준법투쟁을 했어야 했다. 의료현장을 지키면서 비번이나 휴식 시간 등을 이용해 피켓이나 침묵시위 등의 평화적 방법으로 시위에 나섰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단체 대표들이 강경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의사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정부 비난 발언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의사 맞나"며 미간을 찡그린 것은 비단 나뿐 아니리라.

물리적 행동이 꼭 필요했다면 의료 행위를 잠시 접어둔 의협 간부들만 나섰어도 충분했다. 무엇 때문에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박차고 나가야만 했을까. 평화적 시위를 펼쳤더라면 의사는 앞서 소개한 의사의 고백처럼 사회의 부정적 시선에서 멀리 비켜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전보다 더 존경받는 의료인으로 부각됐을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말이다.

의사의 본분과 사명은 항상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것 아닌가. 위급 환자들을 병상에 뉘어놓고 의료 현장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의사들의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의사 파업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적은 바로 "의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료 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때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앞세워 강경 투쟁 일변도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잃었다. 이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됐다. 의사를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존재, 직군(職群)이라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 사회의 선(善)을 무턱대고 무시하는 '이기적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의사들의 탓이 크다.

의사 파업에 따른 부작용은 의료 환경에 큰 변화를 몰고 오게 됐다. 웬만해서는 병원 찾기를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던 전공의들은 다른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외국 의사도 들어오게 됐다. 그동안 의사들에게 부여됐던 다양한 베네피트(benefit)도 축소되지 않을까. 의대 증원이 현실화되면 의료계 생태계 역시 급변할 것이다.

사회 엘리트 평가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때 빛을 발한다. 의술을 펼쳐야 할 사람들이 오로지 투쟁 일변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 책무 준수에서 한참 벗어나는 행동이다.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집단으로 우리 사회에 투영된 듯한 의사들은 이제 냉철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이익보다 환자의 아픔을 먼저 생각했나."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틈만 나면 의료 소외 계층을 찾아 아무런 대가 없이 국내외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진료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일부 강경파의 오판으로 총파업에 나서면서 안간힘을 다해 사회적 책무를 준수하는 의사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언젠가 찾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가 아직도 쟁쟁하다. "의사는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다. 의사는 봉사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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