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북핵 대응, 아직도 ‘어린 비둘기’ 타령인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1.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729010016570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7. 29. 17:32

김태우의 안보정론
2023122501002752900150621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전 통일연구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1일 미국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1호 외교관 겸 영업사원'으로 동분서주했다. 하와이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 방문, 동포 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한 후 워싱턴에서는 나토 회의 참석에 더하여 독일, 체코, 폴란드 등 10여 개국의 정상들과 회담을 가졌는데, 체코는 회담 직후 30조원 규모의 원전 사업에 한국수력원자력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방미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11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일체형 확장억제'에 합의한 것이었다. 이날 한·미 정상은 북한 핵도발에 대한 강력대응 의지를 담은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국방부가 작성한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요지는 한국의 재래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통합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인데, 2023년 워싱턴선언의 틀 내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북핵 대응 체제를 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억제(deterrence)'를 중시했던 기존 확장억제에 북한 핵사용에 대한 '응징(retaliation)' 의지를 추가했는데, 냉전 시기 동안 강력한 응징 체제가 미·소 핵전쟁을 예방하는 요체였다는 사실에서 보듯 신뢰성이 담보된 응징 능력과 의지의 과시는 핵억제 전략의 요체다. 한국의 재래전력과 미 핵전력이 통합·일체화되면 미국이 핵응징을 기획·결정·시행하는 과정에 한국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점, 합의한 지침에 따라 실시될 핵-재래 통합 연합훈련이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점 등도 유의미한 성과였다. 그럼에도 북핵 위협이 확장억제 강화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참작한다면, 일체형 확장억제는 향후 더 높은 차원의 북핵 대응 체제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35년 동안의 '폭탄 돌리기'
필자는 1989년 영변 핵단지가 알려진 시기부터 북한의 체제 불안과 불변의 대남 목표를 종합할 때 누구와 어떤 합의를 하든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단언하고 북한만이 핵을 가진 '핵비대칭' 구도가 한국에 강요할 핵악몽을 우려했었다. 그래서 동맹역량 또는 독자역량을 통해 '핵균형(nuclear parity)'을 이루어야만 이후 북한을 진정한 핵군축 또는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설파했고, 핵무장 잠재력을 배양하는 것은 한국의 당연한 '핵주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거 정부들과 정치권이 이런 주장을 경청한 적은 없었다. 한국의 핵잠재력 함양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동맹외교를 엄두 낸 지도자도 없었다. 그 결과, 큰 그림에서 보면 일체형 확장억제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북핵 앞에 벌거벗은 채로 국가 운명을 미 핵우산에 내맡기고 있다. 그러면서 수십 년 동안 북핵의 양·질적 고도화와 핵독트린의 진화를 지켜보았다.

즉, 정부는 지난 35년 동안 "어린 비둘기가 어찌 산을 넘을 수 있겠는가(新鳩何越嶺)"를 뇌까리면서 골치 아픈 핵안보 과제를 후임 정부에게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반복해 온 것이며, 현 정부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나선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는 동안 북핵 상황은 최악을 치달았다. 신냉전의 격화와 함께 최다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핵사용 위협을 반복하고 각종 핵군비통제조약에서 탈퇴하면서 핵비확산 질서는 붕괴하고 있으며, 중·러·북 북방삼각이 핵동맹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핵비확산을 선도해야 하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안보리의 모든 대북 제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북·러가 동맹을 복원하고 '자동 개입'과 '군사기술 제휴'를 공언함에 따라 북핵 고도화도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그래서 극빈의 북한은 이런 '뒷배들'을 믿고 대륙간탄도탄, 극초음속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변칙기동 탄도 미사일 등 온갖 핵투발수단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핵독트린도 초기의 '억제 전용(deterrence only)'에서 핵사용을 전제하는 '핵전투(nuclear warfighting)'를 거쳐 가장 공세적인 '대남 선제 핵사용(pre-emptive nuclear use)'으로 진화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관통하는 신고립주의가 확산하고 있어 한국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이 워싱턴선언에 안주해서는 안 됨을 강변해 주고 있다.

◇동맹 차원의 합의틀(Agreed Framework)
이제 한국은 '대륙으로부터의 핵위협'이 계속 악화할 것에 대비하여 워싱턴선언의 틀을 넘는 새로운 대응이 필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획기적인 확장억제 강화, 나토식 핵공유, 미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핵균형, 독자 핵무장을 통한 핵균형, 핵무장 상태에서의 미국 및 아시아 우방들과의 핵공조 등 다단계 동맹전략의 틀을 구상하고 상황 악화에 비례하여 대응 수위를 높혀가는 방식을 미국에 제안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고는 당장 준비해야 할 것들을 식별해야 한다. 독자 핵무장 잠재력 함양과 관련해서는 새벽녘 도둑처럼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는 절망적인 핵사태에 대비하여 최대한 사전 준비를 갖추되, 마지막 핵무장은 동맹 합의가 필요한 옵션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동맹이 반대하는 핵무장이 초래할 안보 손실이 득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좌고우면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질 것으로 믿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며, 정부는 '일모도원(日暮途遠) 나그네'의 심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계속되는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빈곤과 인권 부재에 대한 주민의 불만 등으로 인한 평양 정권의 극심한 체제 불안을 감안하면, 북핵은 한순간 어느 쪽으로 뛸지 모르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수 있으며 예상치 않은 시점에 '서울 불바다'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모든 핵사용 권한을 최고 통지차에 일임한 상태에서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언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북한의 '핵무력 정책법'을 읽어볼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전 통일연구원장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