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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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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9. 03. 17:38

슬픈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10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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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라틴아메리카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곳 국가들의 발전에 여러 가지 함축을 지닌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완전한 근대국가로 보기 어려운 나라였다. 중세적인 요소가 많이 잔존했다. 이러한 중세적 제도와 문화가 식민지에 이식됐다.

이식된 제도나 문화는 흔히 이식될 당시의 상태로 얼어붙거나 화석화된 채 그 형태와 내용이 유지된다. 라틴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베리아반도의 전통이 이식될 당시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첫째, "유럽은 피레네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피레네 산맥 이북의 서유럽과는 사뭇 달랐다. 수백 년 동안 회교도인 무어인들(=모로코인)의 지배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무어인들에 대한 재정복전쟁(reconquista)의 과정에서 비교적 일찍부터 중앙집권화가 시작됐기 때문에, 탁신(commendatio)의 대가로 면세권(immunitas)을 지닌 봉토(feudum)를 부여하던 봉건주의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봉건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근대 민주주의의 발달과 정착에 크게 기여한 계약과 분권의 관념이 이들 국가에서는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도 민주주의가 자라나기 어려운 토양이었다.
둘째, 구조나 작동 그리고 사회에 대한 침투력에서 근대 절대주의국가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니는 관료제 이전의 중앙집권적 국가기구가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로 이식됐다. 이러한 제도는 소국의 경영에는 적합했는지 모르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광활한 제국을 경영하는 데는 기술적인, 물리적인 뒷받침(도로, 통신, 군대 등)을 결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지방권력의 도전에 언제나 노출돼 있었다.

그 결과 명목상의 중앙집권제도와 실제상의 지방분권 사이에 갈등이 상존했다. 브라질에는 "왕의 권위는 대농장의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지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무수히 많았지만 거의 모두가 실패한 데는 바로 정부의 침투력이 제한된 데 크게 기인한다.

셋째, 중세의 지체주의(肢體主義: corporatism) 전통이 강한 이베리아반도의 교회가 라틴아메리카에 이식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종교재판과 반종교개혁 (counter-reformation)의 본거지였다. 중세적 교회전통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러한 이베리아반도의 교회가 그대로 이식됨으로써 권위주의적 문화가 정복 이전에 존재하던 권위주의적 전통 위에 덧씌워져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끝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인 불평등의 씨앗도 식민 초기에 뿌려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왕은 한편에서는 광활한 땅에서 식민(植民)사업을 벌이기에는 제한된 왕가의 재정 때문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업실패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넓은 땅들을 이윤 공유의 조건으로 일종의 '벤처 사업가'인 정복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다시 정복에 참여한 휘하 군인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정복자는 적고 땅은 넓었기 때문에 이들이 나누어 받은 땅은 본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였다.

물론 스페인 왕가의 경우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땅을 정복자들에게 나누어 준 것만은 아니었다. 포교의 의무를 지고 있던 스페인왕은 인디오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들을 스페인인들에게 위탁하는 동시에 이 인디오들이 먹고살 수 있게 땅도 함께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엔코미엔다(encomienda)로 불린 이 제도는 이내 정복자들이 토지를 차지하고 인디오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훗날 이 제도의 폐해에 눈뜬 스페인 국왕은 이 제도를 폐지하지만 이미 대농장제와 인디오 착취는 깊이 뿌리를 내린 다음이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과 부의 집중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구의 3% 내외가 전체 토지의 70%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986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살바도르까지 버스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 함께 지냈던 농장주의 얘기를 해보겠다.

우루과이에 접경한 히우그랑지두술 출신인 이 농장주 부부가 보여준 사진에는 씨 뿌리고 농약 뿌리는 데 사용하는 프로펠러 비행기도 있었다. 그래서 "너 부자로구나!" 했더니 아니란다. '생산자'는 브라질에서 부자가 될 수 없단다. 자신의 농장에서는 1년에 쌀을 80㎏짜리로 3000부대를 생산하는데 중간 규모에 불과하다면서 큰 농장은 자기 농장의 10배는 된다고 했다.

당시 주제 사르네이 정부가 농업개혁안 내놓고 있었다. 그래서 농지개혁법이 시행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이 40가구가 있는데 농지개혁은 최악의 경우에도 이 일꾼들 집에 새 TV 수상기가 생기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명목상으로 이들에게 땅을 팔았다가 잠잠해지면 되사들이고 감사의 표시로 TV 한 대씩 사주면 그만이라는 얘기였다. 이게 라틴아메리카다.

이영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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