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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칼럼] 해리스-트럼프 TV 토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김용호 칼럼] 해리스-트럼프 TV 토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기사승인 2024. 09. 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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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지난 10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진행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간의 대선 후보 TV 토론이 끝난 후, 거의 모두가 누가 이 토론에서 이겼느냐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물론 필자도 누가 토론을 더 잘하는지를 열심히 관찰했지만, 이번 토론은 미국 정치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누가 대선에서 승자가 되든지 미국의 장래는 밝아 보이지 않았다.

첫째, 두 후보가 모두 미국의 장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해리스는 고작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로운 길을 가자(not going back, new way forward)"고 역설했지만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매우 허전하였다. 중산층을 강화하기 위해 첫 주택 구입자에게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 애기를 가진 부모에게 세금 혜택, 물가 안정 등을 포함한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 정책을 제시했지만, 이런 정책을 실현하면 장차 미국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만약 해리스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앞으로 8년 동안 미국을 통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가 미국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한편 트럼프 후보는 8년 전부터 "미국의 위대한 부흥(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을 계속 내세우고 있으나 이번 대선 공약이 자신이 집권한 시기의 정책과 별로 차이가 없고, 더구나 미국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꿈꾸는 미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백인노동자와 농촌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인가? 힘을 바탕으로 미국에 순종하는 동맹국을 중심으로 평화롭게 사는 세계인가? 이번 토론은 이런 의문만 남기고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둘째, 이번 TV 토론이 미국정치의 양극화를 절절히 보여주었으나 양극화 해소와 국민통합을 위한 처방은 물론 구호마저 없었다.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았다. 트럼프가 자기 진영의 인터넷에 유포된 소문, 즉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의 이민자들이 이웃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는 허위정보를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주장하였다. 이는 트럼프가 자기 진영에 갇혀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또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분열의 정치가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해리스의 인종적 정체성(인도계인가, 흑인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언행에 대항하여 해리스가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인종, 남녀, 세대, 도시와 농촌간의 갈등 등으로 갈가리 찢어진 미국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셋째, 이번 토론은 두 후보가 서로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경쟁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발언 33건 중 16건, 해리스 발언 8건 중 2건을 '거짓'으로 판정하였다. 거짓말 논쟁을 벌인 대표적인 사례가 낙태권 문제인데, 트럼프가 "해리스가 택한 부통령 후보는 임신 9개월 낙태도 괜찮고, 출생 후 죽임(execution after birth)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주장하자, 사회자가 미국에서 애기를 죽일 수 있는 법은 없다고 정정해 주었다. 트럼프의 발언 직후 해리스는 "처음부터 말씀드렸듯 오늘 거짓말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맞받으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전국적인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공격하자, 트럼프 역시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응수했다.

한편 트럼프가 이민자 폭증으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하자, 사회자가 "FBI는 범죄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고 정정하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FBI의 사기"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시청한 TV 토론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무조건 거짓말로 몰거나 사실관계를 비트는 허위 주장을 내놓을 정도로 미국 정치가 타락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두 후보가 상대방의 정책이나 리더십 능력을 검증하는 것보다 미끼(bait)를 던져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치중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해리스 후보가 이민문제를 피하기 위해 "트럼프의 유세에서 사람들이 지루해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미끼를 던지자, 트럼프가 발끈하는 바람에 해리스는 트럼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또 "트럼프가 400만 달러의 유산을 받아서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해리스가 트럼프를 공격하자, 트럼프는 이를 해명하느라 정책 논쟁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 해리스의 미끼 전략에 트럼프가 걸려드는 바람에 전자가 승리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미국 정치가 미끼에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한심스러웠다.

우리들은 미국 정치의 타락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미국의 좋은 정치제도나 장점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미국 정치가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가적 과제(national agenda)와 국가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미국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케인즈 경제정책 노선을 버리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한 이후 30여 년간 번영을 누렸으나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이 한계에 부닥쳤으나 아직 새로운 국가노선을 개발하지 못하여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은 다양한 국가적 과제(북방외교, 세계화, 정보화,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경제영토 확장, 글로벌 코리아 등)를 개발하여 국민의 힘을 결집한 결과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이후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특히 정치권이 국민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비전 대신 미국처럼 혐오의 정치, 분노의 정치에 매달려 진영 정치에 갇혀있어서 안타깝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하루빨리 팬덤 정치나 거짓말 시합, 미끼 정치에서 벗어나 국민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국가적 과제를 개발하여 양극화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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