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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경제악법 누가 만들었나 따져보고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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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4. 02. 17:42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민주(民主)는 민(民)이 주인(主人)이라는 뜻이겠다. 한자 '民'은 '백성 민'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기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사는 백성이 그 고을의 원(元)에게 자기를 이르던 일인칭 대명사'라고 되어 있다.

'백성(百姓)'은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일반 국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로 풀이되고, 元은 '으뜸 원'으로 고을의 우두머리, 두목(頭目), 임금 따위를 말한다. 요즘은 도지사나 시장 등 고을의 수령이라도 동시에 民의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民과 元의 경계가 희미해져, 위의 사전적 의미의 民은 현재에는 맞지 않다. 지금은 민주란 어느 단체의 구성원 전체가 주인인 것을 말하고, 민주주의는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민주주의의 결정적 약점은 모든 구성원이 만족해야 하는 데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지도자가 포퓰리즘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문제는 구성원의 다수가 항상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프랑스 정치철학자 조지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1753년 4월 1일~1821년 2월 26일)는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가진다"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의 민주주의는 난장판이 되기 쉽다. 지금 한국 정치판이 난장판이다.
기왕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상 난장판이 되지 않으려면 뛰어난 지도자가 민중을 설득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 사람 개인이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고작 한 개인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20세기에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러시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토록 낭만적인 러시아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상자 수는 민간인을 포함해 총 5000만명에서 8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든 것은 한국에 뛰어난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위대한 지도자도, 구국의 영웅도 끊임없는 음해와 악의에 찬 선동에 몰려 비참하게 스러져 간 경우가 많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국가를 개조하고자 했으나 기득권자들인 귀족의 반발로 망명객이 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천하무적 한니발을 격파해 로마를 구했던 구국의 영웅 스키피오는 자신의 묘비에 "은혜를 모르는 조국이여, 너희는 내 뼈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썼고, 한니발이 죽던 해에 쓸쓸하게 죽었다. 한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미국 하와이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의 조국 대한민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뼈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로마제국은 위대한 집정관 또는 뛰어난 황제들의 훌륭한 정치 덕분에 2206년 동안 존속했다. 로마 말기에는 군인황제시대가 도래했다. 끔찍한 것은, 군인황제의 재임기간이 겨우 몇 달부터 2, 3년에 그치는 경우가 흔했다는 점인데, 황제들 중에는 부하들에게 살해당한 자가 많았다. 그러나 군인황제 때문만으로 로마가 멸망한 것은 아니며, 역사학자들은 로마 멸망 원인이 총 210가지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국은 1948년 건국 이후 76년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었다. 지금 좌우 이념 대립으로 국가가 거의 두 쪽이 난 한국 민주주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국은 지금 자유를 제1의 가치로 삼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그의 반대편에서는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인격마저 의심되는 사람이 당대표가 되어 집권욕을 불태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자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당대표를 한다고 나섰다.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난장판이라 하는 것이다.

심판은 국민이 한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어리석어 부적격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지나칠 정도로 똑똑하고 이해타산이 빠르다. 그들은 지도자가 설득하고 이끈다고 해도 따르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선택은 국가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일 공산이 크다. 자신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범죄자든, 이중인격자든, 선동질을 일삼는 사기꾼이든 상관없이 표를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거 한국 정치인 선거가 명쾌하게 이해된다. 물론 어떤 동기에서든 국민이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였다. 경제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기를 낳을 수 없어 인구가 크게 감소한다.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으며, 기간시설은 노후화되고, 에너지는 고갈되며,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다.

지도자가 중요하지만 경제를 무시하고서는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야당은 필연적으로 여당이 경제를 망쳐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그들에게도 집권의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결국 지도자를 받쳐줄 여당이 야당의 경제 악법을 저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의석수를 확보해야만 경제가 살고 민주주의도 살아남을 수 있다. 4월 10일 투표 전에 어느 당이 더 경제를 잘 아는가를 따져 보면 좋겠다.

그것은 그동안 수많은 악법, 예컨대 '타다금지법'처럼 기업가정신을 죽이는 법률이나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법률을 어느 당이 발의하고 통과시켰는지를 따져 보면 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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