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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우리사회의 이상한 ‘정치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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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6. 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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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흔히 우리 사회를 정치과잉 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통상적으로 정치과잉 문제가 지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정치과잉 문제는 사회 내 자원의 배분을 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고 여기에 대한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정치과잉 문제에 더해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인, 정치가 사법의 문제들에까지 간섭하려고 나서는 현상까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사회와 여타 선진국을 막론하고 자발적 교환을 특징으로 하는 시장을 통한 사회 문제의 해결보다는 정치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이런 정치적 해결책이 실은 사회적으로 더 큰 갈등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의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경고를 하곤 했다.

그래서 랜들 홀콤(Randall Holcombe) 같은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갈등을 일으킨다. 시장은 협동을 일으킨다." 그 이유로 그는 "(정치에서는)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들이 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당신이 상점에 갈 때, 점원에게 당신들이 똑같은 종교적 신념들을 공유하는지, 이민 정책에 의견을 같이하거나 수정 헌법 권리들에 찬성하는지, 혹은 낙태나 동성 결혼에 관해 똑같은 견해들을 가지는지 묻는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에 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https://blog.independent.org/2016/02/09/politics-creates-conflict/)

조금 더 친절하게 이 문제를 설명하면 이렇다. "정치적 해결은 …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 정치적 해결은 특정 문제를 … 다수결과 같은 방법으로 정하기 때문에 이 결정과 다른 선호를 가진 경제주체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 강제 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고, 여기에 더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후생을 잃는 경제주체들이 나타난다." (졸저, 《번영은 자유주의로부터》 3장 정치적 해결이 정답일까? 165쪽)
구체적인 예를 통해 이 문제를 들여다보자. 한때 "종교재단의 사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 문제를 두고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금을 거두어 그 돈을 교육에 투입하면 종교교육을 할 것인지, 어떤 종교 교육을 할 것인지, 어떤 교과과목을 가르칠지 등 사람마다 다른 여러 주제에 대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위의 책 166쪽) 정치적으로 한쪽으로 결론이 나면 이 결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학부모와 학생들은 좌절하게 된다. 종교교육을 하기로 하면 이에 반대하는 학부모를, 반대로 종교교육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이를 원하는 학부모를 실망시키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투쟁도 치열해진다.

우리나라 정치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자주 거론하는 '지역주의'의 문제도 공공재원을 특정지역으로 배분할 것인지를 두고 나타나는 정치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는 특정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그 지역에 대한 공공투자가 늘고 기업들의 입지까지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출신 인사들의 관직이나 공기업의 자리 등으로의 사회적 진출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주의 정치의 핵심은 이런 공공재원인 세금을 어떤 지역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둔 정당 간의 투쟁이다. 이런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재정의 지방으로의 배분을 최소화하여 사실상 없애고 그 지역에서 재원을 거두어 그 지역에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진정한 재정분권의 실천일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 다른 선진 사회들에서는 보기 힘든 이상한 정치적 투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수사를 검사가 하는 것을 '탄핵'을 통해 막으려고 한다거나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마저도 '탄핵' 운운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검사들을 비롯한 법무부, 그리고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법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당이 사법부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것을 두고 보면서 용인하게 되면,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수사와 재판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이는 모든 이들의 '법 앞의 평등'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시민들이 그런 사법과정을 공정하다고 여길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과잉'에서 벗어나야 하고,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치과잉'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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