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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율의 아테네에 길을 묻다] 도편추방(陶片追放, Ostracism)의 망령

[한상율의 아테네에 길을 묻다] 도편추방(陶片追放, Ostracism)의 망령

기사승인 2024. 08. 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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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이 새겨진 도기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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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율 전 국세청장
2500년 전 고대의 아테네에는 도편추방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는 시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은 물론 군림할 염려가 있는 사람을 투표에 부쳐 6000명 이상이 찬성하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깨진 도기 조각에 이름을 새겨 넣는 방법으로 투표가 이뤄졌기 때문에 도편추방이라 부른다. 군림할 염려가 있는 사람도 그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과 국외추방 이외의 어떠한 불이익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고대의 아테네에서 BC 487년부터 BC 416년까지 71년에 걸쳐 총 13번의 도편추방이 있었으니, 평균 5~6년에 한 번꼴로 적지 않은 횟수다. 특히 살라미스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해군력 증강 정책에 반대하는 4명을 5년 사이에 연이어 도편추방 하였다. 해군력 증강이라는 그의 정책은 올바른 것이었지만,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도편추방을 악용하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고, 11년 후 그 자신도 도편추방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사진참조).

그가 말년에 신전을 짓고 그곳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였으나, 정치적 보복이었음은 분명하다. 그 이후 있었던 7번의 도편추방은 애꿎은 사람을 속죄양으로 추방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한때 아테네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던 도편추방이라는 제도가 편 가르기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던 것이다.

도편추방 제도는 무릇 제도란 그 제도의 올바른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잘못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역사적 교훈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2500년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아테네의 도편추방과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탄핵제도가 남발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출범 후 탄핵소추안을 벌써 11번이나 발의했다.

그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안동완 검사의 탄핵소추안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나머지 탄핵소추 사건도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의 탄핵소추가 정치적 무리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정부 수립 이후 평균 3년에 한 건 정도이던 탄핵이 지난 2년 동안 무려 11건이나 발의된 것은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더하여 민주당은 뜬금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의 이런 행동은 나름대로 목적과 계산이 있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지난 4·10 총선 압승에 따른 자신감이 깔려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국민이 계속 지지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당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4·10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당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김건희 여사에 실망한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 것은 윤석열 후보 또는 국민의힘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재명 후보와 김혜경 여사에 실망한 국민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윤석열 후보의 상대가 이재명 후보가 아니라 이낙연 후보였더라면 0.7% 차이에 불과한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아테네가 도편추방의 망령에 빠져 나라를 망친 것처럼 탄핵의 망령에 붙들려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자신들까지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표의 말처럼 '먹사니즘'에 전념하기를, 허황되지만, 기대해 보고 싶다.

지금처럼 당의 대표는 먹사니즘을 외치는데 민주당은 주야장천(晝夜長川) 허구한 날 탄핵과 특검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으면 머지않아 국민으로부터 "대통령 탄핵과 무더기 특검이 먹사니즘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국민은 탄핵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정치권의 권력다툼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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