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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대기업 직원 할인, 공평과 멀다

[이경욱 칼럼] 대기업 직원 할인, 공평과 멀다

기사승인 2024. 03. 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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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언젠가 지인이 현대자동차의 새 승용차를 몰고 왔다. "와우, 새 차네요. 비쌀 텐데…." "아, 이거 직원 할인 30% 받은 거예요."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현대차 직원이 아니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직원 할인을 받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것을 자신이 타고 다닌다고 자랑했다. 현대차는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 따라 복지 차원에서 직원이 차량을 구입할 때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30% 싼 가격으로 차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많은 대기업 직원은 자사 또는 계열사 제품을 구입할 때 할인 가격 적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신세계 계열사 직원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때 30% 할인 혜택을 받고 있다.

대기업의 이런 직원 할인 판매는 그 시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직원 복지 차원이라니 뭐라고 탓할 수 없다. 자사나 계열사 제품을 소비하는 직원은 회사에 애사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사 또는 계열사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한 뒤 이를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편법이고 일탈 행위다. 제품이 고가일수록 그렇다.

국세청이 일부 현대차 직원들이 자동차를 할인받아 산 뒤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는 행위를 탈세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만 봐도 그렇다. 현대차 직원이 본인 명의로 할인받아 출고한 신차를 다른 사람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운행하는 사례를 두고 한 말이다. 국세청은 현대차 직원의 차량 할인과 관련, 세무조사 때마다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차량 명의자(직원)와 실제 운행자가 불일치(제3자가 보험 가입하고 운행)한 경우 탈세가 명백한 만큼 개인에 소급 과세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럴 경우 최고 수천만원을 납부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게 국세청의 시각이다.

기업이 직원에게 자사 제품을 할인 판매하는 경우, 법인세법에 따라 할인 가격이 법인의 취득가액(제조원가) 이상이어야 하며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지 않아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최대 30% 할인이라면 제법 높다. 제품을 할인 구매한 직원은 그 제품을 '통상 자기의 가사를 위해 소비'해야 한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할인받은 차를 타고 다니고 싶어 해 편법을 저지른다면 탈세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국세청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제품 할인은 이제 사회적 논란거리로 확산하고 있다.

차량 구입 후 몇 년 지나면 새 차 선호 심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자동차는 가액이 다른 소비 제품보다 월등히 높아 일탈의 유혹이 강렬한 편이다. 5000만원짜리 차량을 3500만원에 살 수 있다면 무려 1500만원의 할인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유혹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이런 할인 탓에 소비자가격이 혹시 상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못 다니는 것도 마음 상하는 일인데, 제품 구매에서 차별을 느낀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클까. 그래서 고가의 내구재를 구입하려 할 때 혹시라도 할인 혜택을 볼 수 있을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구현하는 공평과 정의의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특정인이나 단체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예외를 두는 것은 공평에서 멀다. 그런 관행과 제도가 평범한 시민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즉시 손질하는 게 공평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옳다. 직원 할인 제도가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된 이 마당에 기업은 서둘러 일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내부 통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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