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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수사로 禍 키운 공수처…“직권남용 수사 맡긴 게 비극”

늦장수사로 禍 키운 공수처…“직권남용 수사 맡긴 게 비극”

기사승인 2024. 03. 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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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9월 고발장 접수 후 사건 핵심 관계자 소환 조사 못해
4일 주호주 대사 임명→6일 출국금지 보도→7일 이종섭 소환
與 피의사실 유포 의심도…"사실이면 심각한 범죄·선거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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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전 국방장관./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종섭 주호주 대사(전 국방부 장관) 출국금지 조치가 4·10 총선을 앞두고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사건 핵심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뒤 해외로 도주시킨 것이라며 '특검'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반면 대통령실과 여권은 총선 등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에서 '도주 프레임'을 띄우고 있다며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하고도 두 달 넘도록 수사를 방치한 공수처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17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지난해 8~9월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관련 고발장을 접수한 뒤 현재까지 사건 핵심 관계자인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수사팀은 지난 1월 해병대사령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와 이 전 장관이 제출한 휴대전화 등 증거물을 분석하는 중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의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사건 수사는 이 전 장관 등이 당초 경찰에 이첩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남용이 있었느냐가 핵심이다. 직권남용 수사의 경우 사건 가담자와 실행자에 대한 수사를 토대로 최고의사 결정권자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공수처가 지난해 12월경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하고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일 주호주 대사 임명 소식이 전해진 이틀 뒤인 6일 출국금지 조치 관련 보도가 이어져 재점화됐다. 결국 공수처는 보도 다음 날인 7일 가장 나중에 불려야 할 이 전 장관을 가장 먼저 불러 4시간 가량 조사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공수처의 '늦장 수사'는 내부 인력 문제에도 기인한다. 이 전 장관 출국금지 조치 직후인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임기를 마치고 차례로 떠났고, 처장직을 직무대행한 김선규 수사1부장마저 지난 4일 사직하면서 송창진 수사2부장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일선에서 수사지휘해야 할 부장검사들에 처·차장 업무가 전가되면서 진행 중인 수사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 주요 사건 대부분 직권남용 아니면 직무유기인데 법리적으로 공소사실을 구성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70년 넘게 노하우를 축적한 검찰에게도 어려운 수사를 공수처에게 맡긴 것이 비극"이라며 "대통령실의 개입 의혹까지 번진 사건이라 공수처로선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출국금지 조치 후 별로 수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수사력 부재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수처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도 1년 넘게 수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직권남용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서 공소장 유출 의혹을 받은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더불어민주당 전주시을 예비후보)에 대해 더 이상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유출자를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대통령실과 여권에서는 공수처가 자신들의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 등 피의사실이 의도적으로 유포된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실제 피의자 출국금지의 경우 가장 민감도 높은 수사 정보로 대통령실이나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도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한 게 정상이다. '알았다면 더 큰 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공수처가 의도적으로 수사 기밀을 흘리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선거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 전 장관 출국금지가 형식상 문제가 없다지만 진짜 문제는 그동안 공수처가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 사건도 공수처가 직접 인지한 것이 아니라 고발장이 접수돼서 형식적으로 수사를 하던 중 사태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지금 공수처가 인력도 없고, 처장·차장 모두 공백인 상황에서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만 되고 있는 자체가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민주당이 '이종섭 특검'을 띄우면서 공수처 무용론도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특검법 발의로 민주당마저 자신들이 주도해 만든 공수처를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출범 후 4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직접 기소한 사건은 3건에 불과하고 5번의 구속영장 청구 역시 모두 법원에서 기각되는 등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최진녕 법무법인 CK 대표변호사는 "정말 정치권에 대한 저승사자와 같은 성과가 있었다면 모를까 더 이상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공수처에 어떠한 기대도 없는 상황"이라며 "사정기관은 검찰과 법원이 서로 견제와 균형만 잡아도 충분하다. 공수처 인력이 더 충원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정(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공수처의 수사 범위가 한정돼 있고 실질적 수사권은 직무유기 정도 밖에 없다. 고위공직자들 직무유기 하나를 수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낭비하면서까지 존속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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