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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쉽게 씁시다] ③판사 대신 AI가 요약·분석·추천…‘이것’부터 선행돼야

[판결문 쉽게 씁시다] ③판사 대신 AI가 요약·분석·추천…‘이것’부터 선행돼야

기사승인 2024. 05. 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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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판결문 요약 적합…법원·리걸테크 등에서 검토 활발
판결문 공개 제한으로 '데이터 부족'…"개인정보보호법 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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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게티이미지
"예컨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 1심 판결문이 3200쪽인데 어떤 국민이 어느 세월에 다 봅니까? 법조 AI(인공지능)에 맡기면 종이 두 장이든, 2000자든 요약 가능해집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고, 판결 작성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입니다."

36년간의 법관 생활을 최근 마친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66·사법연수원 14기)는 아시아투데이와의 전화에서 법조 AI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읽기 어려운 판결문은 그 원인이 '법률용어·법리·분량'에서 비롯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아무리 방대한 글과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주는 '생성형 AI' 도입을 통해 판결문 작성에 대한 판사 업무를 줄이고 일반인의 판결문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생성형 AI' 중심 도입 중…"AI가 쉽게 요약 가능"

2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법조계에서는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한 '판결문 요약·추천·분석 시스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생성형 AI는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에 특화돼 있는 만큼 '판결문 요약'에 적합하다. 특히 판결문은 글의 형식과 구조가 정형화돼 있기 때문에 더 큰 효용을 기대할 수 있다.

김종현 헌법재판소 책임연구관은 '인공지능 법관 관련 헌법적 쟁점의 검토' 보고서에서 "정형화된 법률문서 검토에 있어서는 인공지능이 법조인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는 실험결과가 있다"며 "판결문 분석 역할을 인공지능이 수행한다면, 판사의 시간과 노력이 절약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곧 도입을 앞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안에 담당 사건의 유사 판결문 10개를 자동 추천해 주는 AI 모델을 적용했다. 본래 오는 9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보다 면밀한 점검과 시스템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잠정 연기된 상태다.

대법원은 이번 유사 판결 추천 시스템을 시작으로 AI 도입 분야를 넓히기로 했다. 올해 '데이터 기반 사건관리 및 재판 지원을 위한 AI 분석모델 구축 계획'에 예산 3억9200만원을 배정했다. 해당 AI분석 모델엔 소송 준비서면, 의견서 등 자동 요약 기능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법조 산업계도 생성형 AI를 선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법률 플랫폼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대규모 법률문서 요약 등 기능을 담은 B2B 서비스 '슈퍼로이어'의 올해 상반기 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NIPA 역시 'AI 법률보조 서비스 확산'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의 강 전 부장판사는 "AI가 본격 도입되면 '판결문 간이화(간소화)' 등을 논의할 전제조차 무너진다"면서 "사람이 직접 작성할 필요 없이 판결문 작성에 필요한 '부속품 문장'을 AI가 다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렇게 나온 판결문도 AI가 다 쉽게 풀어서 요약해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발목 잡는 '판결문 공개'…"개정·보완 필요"

법조 AI의 발전에 따라 일반 국민들도 어려운 판결문을 손쉽게 요약해 읽을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AI 발전의 가속화를 위해선 '판결문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습할 데이터가 많아야 AI 기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법원행정처 연구용역을 수행한 서울대 산학협력단 역시 보고서를 통해 "사법부에서 제공받은 판결문 데이터 자체가 너무 적어 곧바로 활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면서 "사법 분야의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선 판결문 데이터가 공개되고 일반에 접근 가능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전면적인 판결문 공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1년 7월 관련법 개정으로 확정 판결문 공개가 시행된 이후 2020년 12월 민사소송법이 재개정으로 미확정 민사소송 판결까지 범위가 확대됐으나 아직 미확정 형사 판결문은 일반인이 열람할 수 없다. 또한 법원의 판결서 열람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판결문은 이미지 형태의 PDF 파일로 텍스트 변환과 기계 판독이 불가능해 AI 학습에 부적합하기도 하다.

강 전 부장판사는 "AI가 엔진이라고 하면 판결문은 휘발유다.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연료가 되는 데이터가 없으면 안 된다"며 "국회에서 개인정보 보호법을 개정하거나 따로 입법 과정을 통해 '판결문 공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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