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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 지정학적 조건과 한국의 역할은?

[강성학 칼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 지정학적 조건과 한국의 역할은?

기사승인 2023. 05.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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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는 한 세대의 탈냉전시대 분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치열한 군비경쟁의 시대로 다시 접어들었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그동안 간직했던 재래식 무기들을 경쟁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소비하고 최신 첨단무기들로 재무장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반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중국의 신제국주의적 도전과 정책을 위한 군사력 증강으로 제2차 대전이후 줄곧 이 지역의 안정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미국에 도전함으로써 관련 모든 국가들을 긴장시키고 군비증강을 촉발했다. 그렇다면 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심화되고 있는 긴장은 어떤 지정학적인 의미를 갖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1904년 2월 러일전쟁의 발발 소식을 접한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할포드 맥킨더(Halford Mackinder)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해상수송보다 더 신속하게 병력과 장비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The Historical Pivot of History)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여기서 그는 해군력이 영국을 시대의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거대한 난공불락의 대륙국이 지정학을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중심축은 유라시아 대륙이고 이 지역에서 미래의 강대국이 세계의 지배를 이룰 만한 힘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러시아의 세계 강대국 부상을 예견했다. 이런 주장은 당시에 지배적인 알프레드 마한(Alfred Mahan)의 해군력 중심의 전략적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이후 유라시아 대륙을 두고 러시아와 소위 거대한 개임을 벌이고 있던 영국에게 유라시아 대륙을 둘러싼 초승달 모양의 연안국들과의 유대를 통한 러시아의 견제의 전략을 암시했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에서 헤게모니를 추구한 것은 사실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제국의 견제를 위해 치러졌다. 그는 1947년에 죽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이런 지정학 이론은 큰 관심을 받았다. 그보다 약 70년 앞서 1835년 토크빌(Tocqueville)이 세계는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러나 토크빌은 맥킨더와는 다르게 지정학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이념에 이러한 세계가 근거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혹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미드웨이(Midway) 해전의 승리로 전세를 역전시키기 전인 1942년 미국의 예일대학 교수였던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Spykman)이 영향력 있는 미국 중심의 지정학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확신하고 전후 미국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미국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 중인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일본 제국군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던 중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격돌양상의 예측에 실패한 맥킨더와는 달리 스파이크만은 21세기 중국과 미국의 대립과 충돌을 정확히 내다본 셈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예견이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전쟁 후에 미국은 당시의 교전국인 일본을 패배시킨 후에 미국이 아시아의 일본을 유럽의 영국처럼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고 오직 국가이익만이 영원하다는 소위 파머스톤(Palmerston)의 경구가 오늘날 미-중 관계와 미-일 관계에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구현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고 중국을 돕다가 미국이 참전하면서 중국은 동맹관계로 발전했지만 전쟁이 종결된 후 중국 대륙의 공산화로 다시 오랫동안 적대관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1968년 소련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간섭의 권리를 주장하는 브레즈네프(Brezhnev) 독트린을 선언하고 다음 해인 1969년 중-소 국경지대인 진보도에서 양국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자 이에 놀란 중국은 1970년대 미국의 대소 전략적 파트너로 변신했다. 냉전종식 후에는 독립적 자세를 취하더니 21세기에 들어서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가로 국제질서의 통제자인 미국에게 사실상 도전장을 낸 것이다. 중국은 제2차 대전에서 승전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차 대전 후 승전국 이탈리아가 분노의 팽창주의정책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승전국 중국은 21세기에 들어서 미국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일본과의 관계는 적국에서 동맹관계로 변화했다.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MacArthur) 장군은 일본을 처음에는 영세 중립국인 아시아의 스위스(Switzerland)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1950년 한국전으로 인해 미국의 동맹국으로 선택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한국전쟁의 원인을 소련의 팽창주의의 일환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패전국 일본은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과는 달리 패전에 따른 복수심을 온전히 단념하고 미국의 일방적 보호 하에 경제성장에 집중하여 경제강국으로 부활하였다. 미국이 1969년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선언하고 동맹국들의 역할증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처음에는 단지 비용만을 부담하다가 1996년 4월의 미일 안보공동선언과 1997년의 신가이드라인(New Guide Line)을 통해 일본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넓혔다. 그 후 일본은 정상국가로의 복귀를 모색했다. 2012년 아베 수상이 미국과 국제안보의 "책임을 떠맡을"(buck-taking) 용의까지 밝힘으로써 "일본이 돌아왔다"는 일종의 아베 독트린(Abe Doctrine)을 채택한 셈이다. 이제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세계의 섬"(the world island)으로서 미국의 대전략에서 아시아의 영국이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 역할의 수행이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유럽에서 프랑스의 역할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정책은 여우와 같이 민첩한 중립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의 오래된 다음과 같은 경고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우호적이 아닌 자는 당신의 중립을 요구할 것이고 당신에게 우호적인 자는 당신으로 하여금 무기를 들도록 할 것이다. 우유부단한 군주는 현재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중립을 선택할 것이고 이런 경우 결국 파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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