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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더러운 북한의 핵폭탄에 고귀한 인권폭탄으로 맞서자

[강성학 칼럼] 더러운 북한의 핵폭탄에 고귀한 인권폭탄으로 맞서자

기사승인 2023. 06. 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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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삶에는 두 개의 비극이 있다. 하나는 가슴속에서 욕망의 대상을 잃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냉전의 종식에 융통성 있게 적용한다면 소련은 냉전에서 패배의 비극을 맞았다면 미국은 승리함과 동시에 이제 더 이상 싸울 적이 사라져 버린 비극을 직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공산주의의 메카(Mecca)로서 그 위상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의 처절한 종말을 기록한 반면에 자본주의의 수장인 미국은 빛나는 승리를 통해 세계에서 유일한, 그래서 외로운 초강대국으로 등극했다. 그리하여 세계는 기세가 등등했던 공산주의가 갑자기 사라지고 세계의 모든 국가가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가 됨으로써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활력을 잃어버렸다. 세계인들은 모두가 공허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을 기대했다.

 지난 세기에 탄생하여 21세기의 이데올로기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이 바로 인권이라는 개념과 가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인권(Human Rights)은 20세기의 독창적 창조물은 아니다. 그것은 18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과 19세기의 기본권 개념이 확대 발전하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라는 정치행동적 경험과 유산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 19세기 노예의 해방과 노동계급의 해방 그리고 여성해방이 요구될 때 그것들이 모두 인권의 이름으로 요구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권이 보다 뚜렷하게 범세계적 보편성에 입각한 원리로 인정되고 선언된 것은 아무래도 20세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The Universal Declaration on Human Rights)'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은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경제 및 사회적 권리를 도입하고 모든 인간과 국가에 대한 공통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정치 이데올로기적 국경선을 초월하는 범세계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요구였다. 분명히 그것은 장엄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인권선언은 각국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해석되었고 또 그것의 적용을 각국 정부의 관할권하에 둠으로써 도덕적 설교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보호는 인권선언 이후 꾸준히 국제화됐다. 이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중반부터는 인권이 미국외교정책의 정책적 목표가 됨으로써 세계적 의제로 등장했으며 공산 소련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가 인권의 서구적 의미의 기준을 수락함으로써 인권은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그의 선언이 공산주의 소련과 비공산세계를 분리시키는 헌정질서 및 개념적 간극을 메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에서 인권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권 독트린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성했으며, 각국 정부는 대규모의 인권유린이 국제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할 때 그것이 타국 간섭의 정당성의 토대가 된다고 최소한의 합의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또한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같은 국제기구들이 세계여론을 동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권의 원칙은 걸프전쟁 직후인 1991년 4월 유엔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688호에 기초하여 국제사회는 자국민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박해를 가하는 국가를 제제하기 위한 개입의 권리를 갖는다고 공식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걸프전의 후유증 속에서 이라크 북부에서 야만적 탄압을 받는 쿠르드족에 대한 구원작전으로 실천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의 인류애가 때로는 '불개입의 원칙'에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 유엔의 여러 번에 걸친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2002년 7월 1일에는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가 설립되어 집단학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로 하였다. 그후 이러한 추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2005년 유엔정상회의의 결의와 2006년 안전보장이사회의 제1973호 결의안이 되어 유엔의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이 국제적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그리고 이 규범적 원칙은 2011년 리비아 사태 당시에 무아마르 알-카다피(Muammar al-Qaddafi)에 의해 자행된 학살행위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을 위한 긍정적인 발전이 모든 부정적 장애물을 일소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권에 대한 해석과 적용 및 정책순위는 각 주권국가의 국내관할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과 주권의 관계에선 여전히 주권이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인권유린 문제는 모든 나라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물론 상당수의 이상주의적 지식인들과 자기 조국의 이익보다 유엔을 더 사랑하는 유엔의 연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권의 우상화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은 인권이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대치할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우리는 일련의 매력적인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발견할 수 없다.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도 어떤 초월적 대의에 헌신하길 열망하는 젊은 세대의 영혼을 불태우는 갈망을 채워주는 데 부족하다.

 그러나 인권은 자국의 정부나 정치적 반대편을 공격하는 하나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전체주의적 폭정에 대항하는 하나의 유용하고 효과적인 전략적 공격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북한은 21세기에도 이 지구상에서 최악의 인권유린을 당연시하는 유일한 폭군체제이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에 맞서 북한동포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대북정책의 중대한 수단으로 채택하고 공세적으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권폭탄은 북한의 폭군 김정은에게 잠 못 드는 공포의 밤을 가져다 줄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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