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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딜레마에 빠진 금융정책

[칼럼] 딜레마에 빠진 금융정책

기사승인 2019. 12.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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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호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집행 간부회의에서 “중앙은행은 저성장·저물가 환경에서의 통화정책 운용 등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고 했다. 이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상황임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측치인 2.4%를 크게 밑도는 2.0%로 떨어질 것이라는 KDI 전망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에서는 1%대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지난 8·9월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11월에는 전월 대비 0.6% 하락했다.

이처럼 한국경제는 ‘저성장·저물가’가 지속되고 있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국면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저효과 등 공급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면서 우리 경제가 여전히 견실하다고 보고 있다. 경제정책에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리 경제의 현황과 물가수준의 흐름을 고려할 때 연 1.25%의 기준금리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 투자를 유도할 수 없다면 여당이 ‘과감한 금리 인하’ 정책을 압박하여 ‘제로 금리’ 시대도 예고된다. 그러나 문제는 한나라의 돈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화폐유통속도(화폐의 각 단위가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사용된 횟수)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이자율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19년 1/4분기 현재 화폐유통속도는 0.69로 미국의 1.46에 비해 47% 수준으로, 시중에서 “돈이 안 돈다”는 말이 나오는 등 경기불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처럼 기업의 투자 의욕이 바닥인 상태에서 금리 인하는 유동성 함정으로 전혀 정책에 반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과 가계부채의 증가 등으로 경제의 흐름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금리를 인상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어 총수요가 억제되어 경제는 더욱 악화하는 등 금융정책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이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으로 사상 최대치인 512조원을 확정하는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구하겠지만 이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구조조정의 부진, 부동산 투기,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서 민간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에 불확실성이 크고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볼 때 국민경제는 정부의 다양한 성장촉진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대변되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문제 등 친노동 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는 “친노동 정책 탓에 기업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 가는 현실에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기를 돌파하려면 지속해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소비자가, 투자는 기업이 합리적인 기대에 따라 시장 자율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기업과 시장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종합처방으로 과감한 규제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시현(示顯)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이 조성돼 기업이 합리적 기대에 따라 자율적으로 투자를 늘릴 때,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 정부의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유효한 결과를 낳아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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